유리 성당의 가장 깊은 곳, 중앙 통제실의 공기는 서늘한 침묵으로 가득했다. 빅토르 의원은 거대한 홀로그램 패널 앞에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푸른 빛을 내뿜는 데이터 스트림 사이로 붉은 점 하나가 명멸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라의 생체 신호가 끊긴 지점이었다. 빅토르는 앙상한 손가락으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찻물은 이미 차갑게 식어 수면 위로 얇은 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는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며 곁에 서 있는 비서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비서의 발치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장식품들이 즐비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것이 인간의 손가락 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폐기된 조율사들의 마지막 흔적은 빅토르의 발밑에서 기괴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무음의 반란.
빅토르가 낮게 읊조린 단어가 방 안의 공명 장치를 타고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비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 그 세력과의 연계 가능성을 샅샅이 조사하라는 지시였다. 조율되지 않는 소음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그는 믿었다. 그것이 설령 살아있는 인간일지라도 시스템의 완벽한 화음을 방해한다면 폐기되어야 마땅했다. 빅토르는 차가운 차를 한 모금 머금고는 사라진 붉은 점의 잔상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감정 대신 숫자로 이루어진 계산만이 가득했다.
도심 외곽의 지하 통로에는 습한 곰팡이 냄새와 녹슨 기계의 비릿한 향이 뒤섞여 있었다. 세라는 카이의 뒤를 따라 조율사 연맹의 데이터 센터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걸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의 고인 물이 튀어 올라 그녀의 낡은 부츠를 적셨다. 세라는 자신의 왼쪽 손목을 감싸 쥐었다. 카이가 건네준 소형 장치가 살을 파고드는 듯한 진동을 내뿜고 있었다. 이것은 연맹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조율사들의 생체 데이터를 교란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대가 없는 기술은 없었다. 장치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세라 자신의 남은 생명력을 강제로 주입해야만 했다.
카이는 앞서 걸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긴박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선율이었다. 그는 가끔 뒤를 돌아보며 세라의 상태를 살폈다. 세라의 입술은 이미 핏기가 가셔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장치를 작동시켜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공포를 느꼈다. 생명력을 주입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시스템 속에서 지워지는 것을 의미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영원히 잊힐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 공포보다 더 선명한 것은 엘라라의 차가운 눈빛과 원로원의 기만이었다.
세라는 주머니 속에서 낡은 튜닝 포크 하나를 꺼내 쥐었다. 부모님이 남겨준 유일한 유품이었다. 손때 묻은 금속의 질감이 손바닥에 닿자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세라의 맥박에 반응했다. 세라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이름도, 존재도 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장치의 스위치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푸른 불꽃이 장치에서 튀어 올라 세라의 팔을 타고 번졌다. 그녀의 신체가 미세하게 투명해지며 주변의 공기 흐름과 동기화되기 시작했다.
데이터 센터의 입구는 삼엄한 경비 로봇들이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생체 데이터가 교란된 세라와 카이는 그들의 센서에 포착되지 않았다. 마치 유령처럼 그들 사이를 지나쳐 센터 내부로 잠입했다. 거대한 서버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세라는 중앙 콘솔 앞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접속 단자를 연결했다. 화면 위로 수많은 이름과 숫자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녀는 자신의 기록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검색 필터를 조절했다.
화면 한구석에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다. 세라. 하지만 그 이름 옆에 붙은 수식어는 그녀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실험체 04호. 그것은 단순한 조율사의 등록 번호가 아니었다. 세라는 떨리는 손으로 해당 파일을 열었다. 파일 내부에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된 잔인한 기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원로원의 '공명 최적화 프로젝트'라는 명목하에 진행된 인체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세라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진실은 더욱 처참하게 드러났다.
그녀의 부모님 역시 평범한 조율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원로원의 실험에 동원된 초기 피험자들이었다. 기록에는 부모님이 실험의 부작용으로 인해 신체가 악기 부품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사진과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세라의 아버지는 첼로의 현으로, 어머니는 피아노의 향판으로 변해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소멸했다는 사실이 건조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었다. 세라의 손에 들려 있던 낡은 튜닝 포크가 갑자기 강렬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장치와 반응한 유품이 공명하며 데이터 센터 전체의 진동 주기를 뒤흔들었다.
세라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 안쪽이 뜨거운 납을 삼킨 듯 타올랐다. 자신이 겪어온 모든 고통이 우연이 아닌 철저히 계획된 학살의 연장선이었다는 사실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복수심은 이제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 거대한 파도처럼 그녀를 집어삼켰다. 그때, 센터 내부의 조명이 붉은색으로 변하며 날카로운 경보음이 고막을 찔렀다. 유품의 공명이 보안 시스템을 자극한 것이었다.
카이가 급히 세라의 어깨를 붙잡았으나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모니터 속 실험체 04호라는 글자가 세라의 눈동자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육중한 강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무장한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총구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 조준선이 세라의 가슴과 머리에 집중되었다. 세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포위한 요원들을 응시했다. 그녀의 손에 쥔 튜닝 포크가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기괴한 고음을 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게 내 부모님의 마지막 목소리였나.
세라가 입술을 달싹이며 요원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요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라, 불량품!"
그의 외침과 동시에 천장에서 거대한 금속 케이지가 굉음을 내며 낙하했다. 세라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튜닝 포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앙, 하는 진동음이 센터 내부의 모든 유리창을 박살 냈다. 카이가 바닥을 굴러 세라를 밀쳐내려 했지만 그녀의 발은 이미 지면에 뿌리를 내린 듯 단단했다. 요원들의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 세라의 굳어버린 손가락 끝에서 나무껍질 같은 균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러진 손가락을 들어 올려 자신을 겨눈 총구를 향해 짓이겨진 선율을 내뱉었다.
"전부 부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