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실크 드레스가 공기 중의 먼지를 털어내며 우아하게 흔들렸다. 엘라라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목등뼈를 타고 흐르는 선을 매만졌다. 거울 속의 그녀는 도시의 태양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눈부셨다. 하지만 그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소년의 눈은 공포로 짓물러 있었다. 새로운 조율사는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였다. 소년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악기 케이스를 쥔 채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엘라라는 몸을 돌려 아이의 턱을 부드럽게 치켜올렸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아이의 맥박 위를 느릿하게 훑었다.
너도 세라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내 호흡 하나까지 똑같이 따라 해.
엘라라의 목소리는 달콤했지만 그 안에 담긴 명령은 서슬 퍼런 칼날이었다. 소년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엘라라의 미간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그녀는 아이의 어깨를 강하게 쥐며 손톱을 세웠다. 세라가 사라진 이후로 도시의 공명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거울의 가장자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며 엘라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불분명한 그 조율사의 얼굴이 자꾸만 망막 위에 어른거렸다. 완벽해야 할 무대를 앞두고 불길한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유리 성당의 리허설 현장은 차가운 정적으로 가득했다. 관객석은 비어 있었지만 무대 위의 조명은 이미 타오를 듯 뜨거웠다. 세라는 통풍구 너머 어두운 틈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카이가 옆에서 껌을 씹으며 어깨를 툭 쳤지만 세라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엘라라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소년의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이미 가느다란 은색 실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영혼 조율법에 따른 강제 결합이었다. 연주자의 실수를 조율사의 신경으로 받아내는 저 잔인한 연결을 세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왼쪽 가슴 아래가 찌릿하게 저려왔다. 세라는 자신의 굳어버린 손가락 끝을 만졌다. 나무껍질처럼 딱딱해진 피부 아래에서 불규칙한 박동이 느껴졌다. 엘라라가 피아노 건반을 내리누를 때마다 소년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엘라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려한 글리산도를 내뿜었다. 무대 뒤편의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그 음압에 맞춰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세라의 입술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저 아이의 신경이 끊어지기 전에 이 가짜 천국을 무너뜨려야 했다.
세라는 소리 없이 몸을 움직여 천장 구조물 사이로 스며들었다. 카이가 뒤에서 무언가 속삭였으나 그녀의 귀에는 오직 엘라라의 오만한 선율만이 들렸다. 천장 한복판에 설치된 공명 가속기는 도시 전체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핵심 장치였다. 세라는 품 안에서 불법 칩을 꺼냈다. 카이가 암시장에서 구해온 이 작은 부품은 도시의 질서를 비웃는 불협화음의 씨앗이었다. 손가락 끝이 갈라지며 진액 같은 수액이 흘러나왔지만 세라는 멈추지 않았다. 칩을 가속기 본체에 밀어 넣는 순간 손바닥을 타고 강렬한 전기 신호가 몰아쳤다.
쿠웅, 하는 둔탁한 소리가 무대 바닥 아래에서 울려 퍼졌다. 지하에 매설된 거대 메트로놈이 세라의 분노와 동기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도시를 유지하던 박동이 한 박자씩 밀리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엘라라가 연주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예민한 청각이 시스템의 이상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조명이 미세하게 깜빡이며 유리 성당의 벽면을 기괴한 무늬로 수놓았다. 세라는 숨을 죽인 채 가속기의 전선을 하나하나 재배열했다. 자신의 신경을 악기에 연결했던 감각을 되살려 이번에는 거대한 도시의 심장을 만졌다.
공명 가속기의 중심부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세라는 마지막 연결 단자를 꽂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 순간 발밑의 철제 난간이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비틀렸다. 세라의 시선이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엘라라가 서 있었다. 고개를 꺾어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세라의 것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엘라라의 눈에는 당혹감이나 공포가 없었다. 대신 입가에 천천히 번지는 것은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한 희열이었다.
엘라라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세라를 향해 까닥였다.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애완동물을 부르는 듯한 손짓이었다. 동시에 공연장의 육중한 보안 셔터가 위에서 아래로 낙하했다.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성당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었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된 공간에는 오직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메트로놈의 금속성 박동만이 가득 찼다. 세라는 난간을 움켜쥐었으나 이미 머리 위에서는 붉은 경보등이 회전하며 그녀의 위치를 노출하고 있었다.
"찾았어, 내 조율사."
엘라라의 목소리가 공명 장치를 타고 성당 전체에 메아리쳤다. 세라는 칩을 꽂으려던 손을 멈추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가속기 내부의 압력이 임계치를 넘어서며 푸른 불꽃이 튀었다. 발밑의 메트로놈은 이제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날뛰고 있었다. 탈출구는 사라졌고 카이의 기척도 끊겼다. 세라의 손가락 끝에서 나무 재질의 균열이 팔목까지 타고 올라왔다. 그녀는 부러질 듯 굳어버린 손을 뻗어 가속기의 본체를 부서뜨릴 듯 움켜쥐었다.
엘라라는 천천히 피아노 의자에 앉아 첫 건반을 깊게 눌렀다. 그 소리는 선율이 아니라 포식자의 경고음이었다. 가속기에서 뿜어져 나온 고주파가 세라의 고막을 찢을 듯 파고들었다. 세라는 비틀거리며 난간 아래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무대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는 검은 그림자들이 세라가 서 있는 구조물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엘라라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훑을 때마다 성당 내부의 기압이 급격히 낮아졌다. 세라는 숨을 들이키려 했지만 폐부에는 오직 타오르는 금속 냄새만이 가득했다.
"세라, 네가 없으면 내 연주가 완성되지 않잖아."
엘라라가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된 공명이 세라의 몸속에 박힌 칩과 반응하며 거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세라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엘라라의 연주 주기에 강제로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신체의 주도권이 타인에게 넘어가는 그 끔찍한 감각에 세라는 눈을 부릅떴다. 손가락 끝의 나무껍질이 부서져 내리며 은색 불꽃이 튀어 올랐다. 그녀는 자신을 비웃는 저 화려한 무대 위로 몸을 던지기 위해 바닥을 찼다.
그 순간 천장의 가속기가 폭발적인 굉음을 내며 세라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