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심장의 태엽이 멈출 때
세라의 손에 들린 낡은 튜닝 포크가 공기를 가르며 파르르 떨렸다. 카이가 남긴 마지막 유산은 차가운 금속이었지만 그 안에는 온기가 서려 있었다. 엘라라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완벽을 자부하던 그녀의 고결한 성당에 카이의 죽음이 만든 거대한 무음의 구멍이 뚫렸다. 세라가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등 뒤의 파이프 오르간 날개가 증기를 내뿜으며 기괴한 구동음을 토해냈다.
그 찰나였다.
발밑의 대리석 바닥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다. 성당 전체가 거대한 거인의 손에 붙잡힌 듯 요동쳤다.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가 추락하며 날카로운 파편을 흩뿌렸다. 세라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중력이 사라진 감각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엘라라 역시 중심을 잃고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비틀거렸다.
지하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거대한 기계 장치가 깨어났다. 메트로놈 시티의 심장인 진짜 메트로놈 엔진이 기동을 시작했다. 도시 전체를 지탱하던 지지대들이 육중한 마찰음을 내며 맞물렸다. 창밖으로 보이던 지평선이 순식간에 아래로 멀어졌다. 도시가 공중으로 부양하고 있었다.
엘라라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벽면의 파이프를 붙잡았다. 세라는 튜닝 포크를 바닥에 박아 넣어 몸을 고정했다. 귀를 찢는 듯한 기계음이 도시를 뒤덮었다.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거대한 박동이었다.
규칙적인 진동이 세라의 가슴팍을 때렸다. 심장이 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엔진의 주기에 맞춰 혈액이 펌프질 당했다. 숨이 가빠왔다. 입술을 깨물자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고통을 수치로 환산하며 버티려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엔진은 생명체 그 자체를 부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도시는 처음부터 인간을 조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감옥이었어.
카이가 생전에 내뱉었던 냉소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엔진의 진동은 점점 빨라졌다. 성당 밖에서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공명을 타고 흘러들었다. 모든 생명체의 심장 박동이 엔진의 주기에 강제로 동기화되고 있었다. 이대로 속도가 올라가면 인간의 심장은 파열하고 말 것이다.
세라는 비틀거리며 성당 중앙의 제단으로 향했다. 제단 아래 투명한 강화 유리 너머로 거대한 황금빛 기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도시의 핵이었다. 엔진의 속도를 조절하는 핵심 거버너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엔진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제어 시스템은 이미 과부하로 마비된 상태였다. 세라의 눈에 기어 사이에 난 작은 틈새가 들어왔다. 그곳은 물리적인 압력으로 회전을 억제해야만 멈출 수 있는 구조였다. 인간의 근육과 뼈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이었다.
세라의 손가락 끝을 보았다. 이미 손톱 밑동부터 딱딱한 나무 재질로 변해 있었다. 피부는 거친 껍질처럼 갈라졌고 그 사이로 금속성 광택이 흐르는 수액이 배어 나왔다. 악기화 현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 박동이 엔진과 완벽히 일치하는 순간 기묘한 공명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자신의 심장을 엔진의 핵심 기어에 결합해야 했다. 기계와 생명의 파동을 강제로 충돌시켜 시스템을 정지시키는 자살행위였다. 세라는 떨리는 손으로 유리를 깨부숐다. 파편이 손등을 그었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기계의 진동만이 그녀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왔다.
기어의 회전풍이 세라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감았다. 그녀가 몸을 던지려던 찰나 등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결국 불량품은 마지막까지 불량품답게 구는군."
세라의 몸이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먼지 구름 사이로 정갈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빅토르 의원이었다. 그의 왼쪽 얼굴은 이미 정교한 톱니바퀴와 전선으로 뒤덮여 있었다. 인간의 피부와 기계 부품이 흉측하게 뒤섞인 모습이었다.
빅토르는 스스로를 기계와 결합해 영생의 악기가 되려 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닌 차가운 렌즈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세라의 절망적인 눈빛을 즐기듯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띄웠다.
"이 엔진은 멈추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승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빅토르가 제어반 옆에 달린 붉은색 레버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엔진의 출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과부하 레버였다. 세라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빅토르의 기계 팔이 그녀의 목을 단숨에 낚아챘다.
"너의 그 고결한 희생도 결국 내 유토피아의 연료가 될 뿐이다."
빅토르가 광기 어린 눈을 번뜩이며 레버를 힘껏 당겼다.
콰드득.
세라의 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엔진의 굉음 사이로 섞여 들었다. 빅토르의 손아귀는 차가운 강철 그 자체였다. 숨이 막혀오는 와중에도 세라의 시선은 제단 아래의 기어를 향했다. 목을 조르는 고통보다 가슴 속의 진동이 더 선명해졌다.
"놓아, 줘."
세라가 쇳소리를 내뱉으며 그의 기계 팔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의 나무 재질이 빅토르의 금속 외피를 파고들었다.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생명력을 연료로 태우는 공명 분산의 폭주였다.
빅토르의 눈동자 렌즈가 빠르게 회전하며 초점을 맞췄다. 그는 자신의 팔을 파고드는 세라의 손가락을 흥미로운 듯 내려다보았다.
"공명 수치가 한계치를 돌파했군. 장렬한 폐기 방식이다."
빅토르는 그녀의 몸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세라는 부서진 유리 조각 위로 굴러떨어졌다. 차가운 유리 파편들이 뺨과 어깨를 깊숙이 찔렀다. 그러나 흐르는 액체는 붉은 피가 아니었다. 투명한 공명액이 바닥의 대리석 문양을 타고 번져나갔다.
멀리서 엘라라가 웅크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와 혐오가 뒤섞여 있었다. 한때 자신의 모든 불협화음을 대신 짊어졌던 조율사가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은 그녀에게 단순한 공포 그 이상이었다. 자신의 고결함이 저런 추악한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엘라라는 눈을 감았다.
세라는 바닥을 긁으며 다시 기어 앞으로 기어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굳어 움직일 때마다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심장은 이제 엔진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뛰고 있었다. 박동 한 번에 가슴이 찢어지는 충격이 전달되었다.
"안 돼."
엘라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네가 그걸 멈추면 내 연주는 어떻게 되지? 내 무대는?"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성대가 이미 악기의 현처럼 팽팽하게 굳어버린 탓이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의지를 모아 기어의 틈새로 손을 뻗었다.
빅토르가 다시 다가와 그녀의 등을 구두로 짓눌렀다.
"헛수고다. 이미 이 도시의 공명은 임계점을 넘었다."
그의 말대로 성당의 유리벽이 하나둘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도시를 감싸고 있던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유리 성당을 거대한 공명 통으로 만들었다. 시민들의 심장은 이미 엔진의 박동에 잠식당해 하나의 거대한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세라는 등 위를 짓누르는 압력을 견디며 튜닝 포크를 기어의 중심축에 갖다 댔다. 카이가 말했던 마지막 조율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리로 소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 존재를 부정하는 법.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악기화된 신체가 엔진의 금속 부품들과 공명을 시작했다. 세라의 신경계가 성당 전체의 파이프라인과 연결되었다. 도시의 모든 소리가 그녀의 뇌세포를 직접 타격했다.
빅토르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기계 팔이 세라의 몸과 동기화되어 멋대로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불량품!"
빅토르가 권총을 꺼내 세라의 머리를 겨누었다. 세라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는 엔진의 핵심 기어와 똑같은 황금빛 회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세라는 빅토르의 발목을 낚아챘다. 기계와 기계가 맞물리는 쇳소리가 성당을 메웠다. 그녀의 몸에서 뻗어 나온 나무 덩굴 같은 신경들이 빅토르의 정장을 찢고 그의 기계 부신을 파고들었다.
"같이 가자."
세라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도시 전체의 스피커를 통해 그녀의 진동이 울려 퍼졌다.
빅토르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와 함께 세라의 어깨가 뒤로 젖혀졌다. 하지만 그녀는 놓지 않았다. 오히려 빅토르의 몸을 끌어당겨 회전하는 기어 속으로 함께 밀어 넣었다.
두 사람의 몸이 육중한 황금빛 기어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금속이 살점을 으깨고 뼈를 가루로 만드는 비명 같은 마찰음이 성당을 뒤흔들었다. 거대한 기어가 일순간 멈칫하며 불꽃을 튀겼다. 엔진의 박동이 불규칙하게 튀어 오르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정지했다.
부양하던 도시가 허공에 멈춰 섰다.
엘라라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기어 사이에 끼어버린 세라의 굳어버린 손이 마지막으로 파르르 떨리다 멈췄다.
정적.
메트로놈 시티에 역사상 유례없는 침묵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지한 엔진의 핵에서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솟아올랐다. 세라의 육신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기계와 인간의 파편이 뭉쳐진 기괴한 형상의 조율 도구가 공중에 떠 있었다.
카이의 껌 씹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엘라라가 비틀거리며 제단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세라의 튜닝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튜닝 포크가 엘라라의 손바닥을 날카롭게 베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차가운 기름이었다.
엘라라가 자신의 손을 경악 섞인 눈으로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