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골목 지하는 언제나 습기로 눅눅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오염된 물방울이 고철 무덤 사이로 스며들었다. 폐기물 처리장의 공기는 낡은 악기들이 내뿜는 녹슨 냄새로 가득했다. 세라는 부서진 건반과 휘어진 현들이 뒤엉킨 틈새에 몸을 웅크렸다.
멀리서 규칙적인 발소리가 울렸다. 원로원 집행관들의 장화가 바닥의 물웅덩이를 짓밟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메트로놈처럼 정교한 박자로 세라의 고막을 두드렸다. 세라는 숨을 죽이고 깨진 유리 조각을 손바닥 안에 감추었다. 날카로운 단면이 살점을 파고들었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왼손가락은 이미 절반 이상 목석처럼 굳어 있었다. 나무껍질처럼 변한 피부가 딱딱하게 갈라지며 바스락 소리를 냈다. 그녀는 굳어버린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혈향이 입안을 채우자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집행관들의 서치라이트가 어둠을 갈기갈기 찢으며 다가왔다. 푸른 광선이 머리 위를 스칠 때마다 세라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그녀는 옆에 떨어진 금속 가방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도주 중에 음계 기록실에서 챙겨 나온 낡은 서류 파편들이 가방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세라는 떨리는 오른손을 넣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보관소에서 훔쳐낸 그것은 뮤직 뱅크의 직인이 찍힌 담보 대출 계약서였다. 서류 상단에는 엘라라의 화려한 서명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세라의 시선이 계약 조건이 적힌 문구에 머물렀다.
담보물 항목에 적힌 글자가 망막을 찔렀다. 조율사 세라의 신경계 및 생체 데이터 일체. 엘라라는 자신의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세라의 존재 자체를 은행에 저당 잡힌 상태였다. 거액의 대출금은 이미 엘라라의 개인 계좌로 지급된 뒤였다.
그녀는 손가락 끝을 타고 흐르는 냉기에 몸을 떨었다. 자신이 지켜온 예술적 숭고함은 한낱 종이 조각에 불과했다. 엘라라의 완벽한 선율을 위해 고통을 감내했던 시간들이 조롱처럼 다가왔다. 그것은 헌신이 아니라 강요된 착취였고, 우정이 아니라 철저한 기만이었다.
다른 서류 조각을 넘기자 더 잔혹한 진실이 드러났다. 강제 전이술 승인서라는 제목 아래 엘라라의 지장이 찍혀 있었다. 세라가 폐기 처분되기도 전에 이미 새로운 조율사가 내정되어 있었다. 엘라라는 세라의 손가락이 굳어가는 것을 보며 새로운 소모품을 고르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당신의 음악을 지킨 게 아니라, 당신의 빚을 갚기 위한 소모품이었을 뿐이군.
세라는 소리 없이 입술만 달싹이며 그 문장을 뇌까렸다. 목 안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올라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배신감은 칼날이 되어 가슴 깊숙한 곳을 헤집고 다녔다. 그녀가 믿었던 세계가 공명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불협화음처럼 산산조각 났다.
서류 더미 구석에서 낯선 단어 하나가 세라의 눈에 박혔다. 무공명자. 기록실의 파편에 적힌 그 단어는 시스템의 오류이자 제거 대상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었다. 악기 없이도 공명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전설 속의 존재들이 실재한다는 증거였다.
그때 은신처의 철제 문이 굉음과 함께 뜯겨 나갔다. 집행관들의 거친 숨소리와 기계 장치가 맞물리는 소음이 좁은 지하실을 채웠다. 세라는 구석으로 몸을 붙이며 바닥의 흙을 손톱이 빠지도록 긁었다. 도망칠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불량품을 회수한다. 저항은 등급 하락의 원인이 된다."
집행관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벽면에 반사되어 울렸다. 세 명의 집행관이 전자기봉을 치켜들고 세라를 포위했다. 푸른 전류가 공기 중의 습기와 만나 지직거리는 소음을 내뿜었다. 세라는 굳어버린 손가락을 바닥에 박은 채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일촉즉발의 순간, 천장 부근의 어두운 환기구 쪽에서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짭조름한 풍선껌이 터지는 듯한 소리였다. 집행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콧노래 소리가 지하실의 긴장감을 비웃듯 퍼졌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가볍게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야, 조율 수치가 아주 개판이네. 이 정도면 악기가 아니라 땔감 수준 아냐?"
느긋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입안의 껌을 굴리며 세라의 굳어버린 손가락을 빤히 쳐다보았다. 집행관들이 그를 향해 전자기봉을 휘둘렀지만, 남자는 가벼운 몸짓으로 공격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남자는 세라의 눈앞까지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나 경멸 대신 기묘한 흥미가 서려 있었다. 그는 세라가 쥐고 있던 깨진 유리 조각을 가볍게 뺏어 들더니 어둠 속에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손가락 꼬락서니 하고는. 너, 나랑 같이 도시 박자 좀 망쳐볼래?"
세라는 대답 대신 남자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은 허공을 할퀴었을 뿐이다. 남자는 능숙하게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렌치를 꺼내 손가락 사이로 굴렸다.
"성깔은 살아있네. 그 손으로 뭘 할 수 있겠어? 원로원 놈들이 오면 얌전히 분해될 일만 남았는데."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행관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전류가 흐르는 봉이 남자의 머리를 노리고 쇄도했다. 세라는 눈을 질끈 감으려 했지만, 기묘한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악기의 소리보다도 불쾌하고 강력한 파동이었다.
남자가 바닥을 강하게 찼다. 그 순간 지하실을 채우고 있던 모든 금속 부품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집행관들의 무기가 공중에 뜬 채 제멋대로 뒤틀렸다. 푸른 불꽃이 튀며 기계 장치들이 과부하로 폭발했다.
"이게... 무슨..."
세라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굳어버린 손을 떨었다. 남자는 아무런 악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명력만으로 주변의 물리 법칙을 뒤흔들고 있었다. 집행관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벽으로 튕겨 나갔다.
"무공명자."
세라의 입술 사이로 서류에서 보았던 단어가 흘러나왔다. 남자는 껌을 뱉어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세라의 금속 가방을 낚아채 어깨에 메고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카이라고 불러. 시간이 없어. 곧 빅토르 영감탱이가 보낸 진짜 사냥개들이 올 거야."
세라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악기화가 진행 중인 왼손의 냉기가 심장까지 뻗어오고 있었다. 카이는 그녀의 상태를 눈치챈 듯 혀를 차며 세라를 들쳐업었다.
"엘라라 그 계집애한테 복수하고 싶지? 그럼 일단 살아야지."
남자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낯설고 뜨거웠다. 세라는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도 자신의 손가락을 조여오는 딱딱한 감각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지하실 밖으로 나가는 비밀 통로가 열리며 차가운 밤공기가 들이닥쳤다.
멀리 유리 성당 꼭대기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엘라라의 새로운 연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세라는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그 빛을 노려보며 카이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카이는 무너진 건물 잔해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안개의 절벽 방향으로 달렸다. 추격자들의 사이렌 소리가 도시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멈춰 서서 벽면에 설치된 낡은 파이프 하나를 발로 걷어찼다.
"준비해. 조금 울렁거릴 거야."
파이프 안쪽에서 기괴한 기계음이 들리더니 바닥이 통째로 아래로 꺼졌다. 세라는 추락하는 감각에 본능적으로 카이의 목을 껴안았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카이가 그녀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너희 둘, 담보 계약은 이미 파기됐어. 내가 그 서류를 좀 만졌거든."
카이는 품 안에서 피 묻은 계약서 조각을 꺼내 세라의 눈앞에서 찢어버렸다.
"이제부터 네 주인은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