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건반이 울리자 허공에 흩어졌던 푸른 입자들이 응집했다. 세라의 영체가 희끄무레한 윤곽을 드러내며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 육신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드러웠던 살점은 간데없고 투명한 푸른 빛을 내뿜는 공명 결정체가 뼈와 근육을 대신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정교하게 깎인 보석처럼 각이 졌고, 그 안쪽으로는 미세한 금속 회로가 혈관처럼 꿈틀거렸다. 인간의 피부 대신 서늘한 결정의 질감이 전신을 덮었다.
세라는 비명을 지르려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 대신 날카로운 고주파음이 새어 나왔다. 세상의 모든 진동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녀의 감각을 난도질했다. 먼지 한 톨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고막을 찢는 굉음으로 치환되었다. 공기 중을 떠도는 미세한 파동조차 피부를 찌르는 송곳니가 되어 박혔다. 재구성된 결정체 육신은 외부의 모든 울림을 증폭시켜 뇌수 안쪽으로 쑤셔 넣었다.
너무 시끄러워.
세라는 귀를 막으려 손을 올렸으나 결정화된 팔꿈치가 삐걱거리며 마찰음을 냈다. 그 소리조차 뇌를 뒤흔드는 망치질이 되어 돌아왔다. 사람들의 뒤섞인 욕망과 땅 밑을 흐르는 기계의 박동이 몸뚱이를 잘게 부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시야가 붉게 물들며 점멸했다. 다시 차가운 무음의 어둠 속으로 숨고 싶다는 유혹이 전신을 지배했다. 존재 자체가 고통인 이 빛의 세계보다 죽음보다 깊은 침묵이 그리웠다.
카이가 당황한 기색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 세라는 감전된 듯 몸을 떨었다. 카이의 체온과 맥박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그녀의 신경계를 덮쳤다. 결정체로 변한 그녀의 가슴팍에서 메트로놈의 태엽 소리가 더욱 빠르게 돌아갔다. 생명의 박동이 아닌 시스템의 가동음이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세라, 정신 차려. 내 목소리에 집중해."
카이의 음성은 찢어진 악보처럼 너덜너덜하게 들렸다. 세라는 이를 악물었지만 결정화된 치아들이 부딪히며 소름 끼치는 금속음을 냈다. 입술을 깨물자 피 대신 투명한 공명액이 흘러내려 턱 끝을 적셨다. 그녀는 바닥을 긁으며 몸을 웅크렸다. 손톱이 석조 바닥을 파고들 때마다 소름 끼치는 진동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사람들의 욕망이, 땅의 울림이 내 몸을 부수고 있어.
세라는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고는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광채가 저장고의 어두운 벽면을 가차 없이 훑었다. 벽에 새겨진 고대 음계들이 그녀의 공명에 반응하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공명 장치가 된 그녀의 존재 자체가 도시의 균형을 위협하고 있었다. 카이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공명 억제용 외투를 벗어 어깨에 덮어주었다.
잠시 후 세라의 호흡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결정체 표면을 흐르던 난잡한 빛의 줄기들이 일정한 주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았다. 흉부 안쪽에서 회전하는 기어들의 진동이 느껴졌다. 인간으로서의 감각은 마비되었지만, 대신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파동의 눈이 떠졌다. 그녀는 이제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수 킬로미터 밖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게 내가 원한 복수의 대가인가."
세라가 고개를 들자 눈동자 속에서 금속성 광채가 번뜩였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동굴 너머, 메트로놈 시티의 중심부를 향하고 있었다. 엘라라가 서 있을 화려한 무대와 그 무대를 지탱하는 썩은 기둥들이 파동의 형태로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 끝을 내려다보았다. 나무껍질처럼 갈라졌던 예전의 흔적은 사라지고, 이제는 무엇이든 찢어발길 수 있는 날카로운 결정 칼날이 돋아나 있었다.
카이는 그녀의 변화된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는 세라가 내뿜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더 이상 조율사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악기이자 연주자이며, 동시에 도시를 파괴할 불협화음 그 자체가 되었다. 세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뗐다. 그녀가 걷는 자리마다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균열이 생겼다.
그때 저장고 외부에서 거대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동굴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지고 바위 파편들이 굴러떨어졌다. 세라의 신경계가 즉각적으로 외부의 신호를 포착했다. 단순한 낙석이 아니었다. 정교하게 계산된 물리적 타격과 공명 억제 파동이 섞인 공격이었다. 카이가 급히 단검을 뽑아 들며 입구 쪽을 경계했다.
"추격대인가? 벌써 여기까지 찾아냈다고?"
카이의 물음에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이미 벽 너머의 진동원을 쫓고 있었다. 지면을 타고 전달되는 불쾌한 금속성 진동이 그녀의 피부를 긁었다. 그것은 메트로놈 시티의 정규 집행관들이 사용하는 무기와는 궤를 달리했다. 훨씬 더 비윤리적이고 기괴한, 생명체의 원망이 섞인 파동이었다.
빅토르 의원이 숨겨둔 비밀 분파가 저장고의 정확한 좌표를 파악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세라라는 변수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도시 외곽의 금기된 무기를 끌어모았다. 동굴 입구 쪽에서 다시 한번 굉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공간 전체의 공명을 강제로 뒤트는 고출력 음파포의 일격이었다.
세라는 가슴을 움켜쥐며 신음했다. 적들이 발사하는 파동이 그녀의 결정체 육신과 충돌하며 불꽃을 튀겼다. 그들의 무기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세라에게 지독하게 익숙했다. 그것은 오래전 기억 속으로 사라졌던 부모님의 숨결과 닮아 있었다. 세라의 눈동자가 분노로 인해 짙은 청색으로 타올랐다.
빅토르 의원이 가져온 무기는 평범한 기계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년 전 실종되었던 세라의 부모님을 산 채로 해체하여 부품으로 박아 넣은 생체 악기 포였다. 포신이 달궈질 때마다 희생된 이들의 비명이 공명 주파수가 되어 날아왔다. 부모의 유해를 탄환으로 삼아 자식을 사냥하려는 극악무도한 설계였다.
저장고 외부의 대지에 거대한 포진이 깔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수십 대의 폭격 장치가 일제히 총구를 저장고를 향해 고정했다. 공기는 비릿한 금속 향과 살점이 타는 듯한 악취로 오염되었다. 빅토르의 집행관들이 포탄에 장전된 생체 부품들을 가동하며 최후의 명령을 기다렸다.
세라는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그녀의 전신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동굴 안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슬픔은 순식간에 차가운 살의로 변질되어 결정체 육신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쏟아질 부모의 비명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동굴 입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섬광이 동굴 입구를 덮쳤다. 1차 폭격이 시작되자 저장고의 외벽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연기 자욱한 구멍 너머로 붉은 제복을 입은 자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들 중심에서 빅토르 의원의 목소리가 증폭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불량품은 그 부모의 손에 파괴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조화지."
빅토르가 냉혹하게 손을 내리자, 생체 악기 포의 포신이 붉게 달아오르며 두 번째 발사를 준비했다. 세라는 무너지는 잔해 속에서 포신 끝에 박힌 익숙한 유품의 문양을 발견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자신의 공명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대기를 고정시켰다.
"전부 부숴버리겠어."
세라가 손을 뻗자 허공에 거대한 현악기의 줄 같은 빛의 줄기들이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의 신경을 그 빛의 줄기에 직접 연결하며 폭격의 궤적 위로 몸을 던졌다. 붉은 화염과 푸른 결정의 파동이 충돌하며 대기를 찢어발겼다. 세라는 가속되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빅토르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