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의 고막을 찢을 듯한 이명이 뇌장을 훑고 지나갔다. 유리관 속에 차오른 끈적한 액체가 턱끝까지 차올랐을 때, 그의 시야는 이미 붉은빛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로 스며드는 것은 산소가 아닌, 차가운 금속성 점액이었다. 사방이 밀폐된 투명한 감옥 안에서 그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불규칙한 메트로놈 소리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머릿속 가장 깊은 곳, 의식의 핵이라 불릴 만한 지점에서 날카로운 진동이 일었다.
—카이, 내 목소리를 따라와.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음성이었다. 그것은 고막을 거쳐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튜닝 포크의 가느다란 떨림이 신경계에 직접 박혀드는 파동이었다. 세라의 목소리는 파동이 되어 침묵의 대지에 흩어진 음계 보석들을 공명시키기 시작했다. 카이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유리벽 너머의 그녀를 보았다. 세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튜닝 포크를 유리벽에 대고 있었다.
—여긴 소리가 죽은 곳이 아니라, 소리를 가두어 둔 곳이야.
세라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영체는 카이의 의식 속에서 명확하게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유리관 바깥의 공기가 일렁였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음계 보석들이 푸른 빛을 내뿜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보석들은 각기 다른 주파수로 울며 세라가 발산하는 공명에 동조했다.
카이는 경련하는 손가락으로 유리벽을 긁었다. 손톱 밑이 터져 피가 배어 나왔지만, 통증조차 멀게만 느껴졌다. 액체는 이제 그의 코끝까지 차올랐다. 그는 마지막 숨을 참으며 세라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금속성 광택을 띠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 자신이 갇힌 유리관의 복잡한 조율 회로가 비쳤다.
"찾았다."
세라의 입술이 아주 작게 달싹였다. 그녀가 튜닝 포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나무껍질처럼 갈라지며 딱딱한 재질로 변해갔다. 그 고통을 감내하듯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튜닝 포크 끝에서 시작된 진동이 유리관의 공명 주기를 정확히 타격했다.
챙그랑.
단단한 투명 장벽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쏟아져 나온 점액과 함께 카이의 신체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폐로 쏟아져 들어오는 공기를 허겁지겁 들이마시며 기침을 토해냈다. 입안 가득 비린 금속 맛이 맴돌았다. 세라는 바닥에 쓰러진 카이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안개 낀 구덩이 위쪽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명의 발소리가 겹쳐지며 불쾌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이들은 거친 가죽 코트를 입고 기괴한 형상의 청음기를 귀에 장착한 자들이었다. 메트로놈 시티의 잔당, '음향 사냥꾼'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소리를 흡수해 물리적인 타격으로 변환하는 진동포가 들려 있었다.
"무음의 핵이 여기 있었군."
사냥꾼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그는 세라의 목등덜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빛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세라의 영체는 단순한 인간의 혼이 아니었다. 침묵의 대지 깊숙한 곳에 잠든 고농축 에너지원을 활성화할 유일한 열쇠였다.
카이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리 근육이 액체에 절여져 제멋대로 떨렸다. 그는 허리춤에서 낡은 연장 가방을 낚아챘다. 껌을 씹을 여유조차 없었지만, 입술을 말아 올리며 사냥꾼들을 마주했다. 그의 눈앞에는 세라가 남긴 푸른색 잔상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카이,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
세라의 목소리가 다시 뇌를 울렸다. 사냥꾼들이 진동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파동이 대기를 가르며 덮쳐왔다. 카이는 세라의 지시에 따라 몸을 낮췄다. 파동이 머리 위를 지나가자 뒤편의 돌기둥들이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세라는 제자리에서 튜닝 포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나무껍질 같은 균열이 바닥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지면이 거대한 악기의 공명판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의 발밑이 요동쳤다. 조율되지 않은 불협화음이 사냥꾼들의 청음기를 타고 그들의 고막을 직접 타격했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귀를 감싸 쥐는 사냥꾼들 사이로 카이가 달려들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핀들을 꺼내 공중에 뿌렸다. 무공명자인 카이의 손길이 닿은 핀들은 주변의 진동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했다. 진동포의 위력이 급격히 감쇠했다. 카이는 당황한 사냥꾼의 턱을 렌치로 후려쳤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구덩이 위쪽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그림자들이 쏟아져 내렸다. 빅토르 의원이 보낸 정예 집행관들까지 합세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세라를 생포하기 위해 그물을 던지듯 공명 올가미를 펼쳤다.
세라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신체의 악기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녀의 목덜미와 뺨 위로 나무테 같은 문양이 선명하게 돋아났다. 그녀는 고통을 억누르며 튜닝 포크를 더 깊숙이 박아 넣었다.
—지금이야. 이 대지의 밑바닥을 조율해야 해.
세라의 영체가 카이의 손을 겹쳐 잡았다. 차가운 금속과 거친 나무의 질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카이는 자신도 모르게 세라의 힘에 이끌려 튜닝 포크 위로 손을 얹었다. 두 사람의 공명이 합쳐지는 순간, 튜닝 포크에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백색 광원이 터져 나왔다.
빛은 단순한 시각적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 사냥꾼들과 집행관들을 밀어냈다. 대기 중의 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음계 보석의 파편들로 변했다. 세라가 방출한 극초단파의 공명이 지면의 특정 주파수와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우르릉, 하는 거대한 진동이 발밑에서 올라왔다. 침묵의 대지 전체가 거대한 유기체처럼 몸부림쳤다. 사냥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지면이 기하학적인 선을 그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 사이로 은은한 금빛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도시의 메트로놈 엔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고 압도적인 진동이었다. 카이는 벌어진 지면 아래를 내려다보며 숨을 멈췄다.
그곳에는 거대한 톱니바퀴와 파이프 대신, 수만 개의 유리 실린더가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공간이 있었다. 실린더마다 담긴 것은 소리였다. 잃어버린 시대의 노래, 죽은 자들의 마지막 속삭임, 그리고 도시가 태어나기 전의 태초의 선율들이 그곳에 저장되어 있었다.
카이의 시선이 입구 정면에 새겨진 거대한 문양에 머물렀다. 그것은 날카로운 음차 두 개가 교차하며 장미 덩굴을 형상화한 모양이었다. 며칠 전, 세라의 유품함 깊숙한 곳에서 발견했던 낡은 금속 배지의 문양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다.
세라가 튜닝 포크를 뽑아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떨어진 나무 파편이 거대한 저장고의 입구로 떨어졌다. 깊은 어둠 속에서 잠들어 있던 거대한 기계 장치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하듯 육중한 구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문이 열렸어."
세라의 건조한 목소리가 카이의 귓가를 스쳤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절벽 아래, 소리의 심연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