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젖혀졌다. 습한 공기를 가르고 매캐한 연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최도현이었다. 그는 입에 문 궐련형 영석을 깊게 빨아들였다. 불그스름한 불꽃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도현의 시선이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운 서하진에게 꽂혔다. 반쯤 감긴 하진의 눈동자가 도현을 향해 느리게 움직였다.
도현의 손에서 스패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쇳덩이가 콘크리트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태윤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거친 손등에 박힌 기름때가 태윤의 하얀 셔츠 깃을 더럽혔다. 벽에 등이 부딪히며 둔탁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태윤의 호흡이 짧게 끊겼다.
너 미쳤어?
도현의 목소리가 쇳가루를 섞은 듯 껄끄러웠다. 그의 숨결에서 타버린 영석의 비린내가 났다. 태윤은 대답 대신 도현의 손목을 잡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현의 시선은 태윤의 어깨 너머, 하진의 창백한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저건 영체야. 그것도 급수가 확인 안 되는 망령이라고.
도현의 외침에 하진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 없는 웃음이 방 안의 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하진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침대 시트를 매만졌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흐릿한 한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태윤은 마른침을 삼키며 도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영체 소멸법 몰라? 너 지금 반역죄야. 관리국 놈들이 알면 네 영핵을 박살 낼 거라고.
도현이 태윤을 더욱 강하게 벽으로 밀어붙였다. 가슴팍을 압박하는 힘에 폐부가 조여들었다. 태윤은 주머니 속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부모님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물건이었다. 하진의 기억 속에 부모님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있었다. 그걸 놓칠 수는 없었다.
이 사람이 필요해. 우리 아버지 사고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태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도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는 궐련을 바닥에 내던지고 구두 굽으로 짓이겼다. 연기가 발밑에서 흩어졌다. 도현은 태윤의 멱살을 놓지 않은 채 하진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너 지금 네 수명을 팔아서 저 괴물이랑 놀아나겠다는 거야?
태윤은 허리춤에 매달린 가죽 주머니를 풀었다. 묵직한 영석들이 주머니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자갈 굴러가는 소리를 냈다. 그가 지난 세 달 동안 목숨을 걸고 모은 전 재산이었다. 태윤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도현의 가슴팍에 밀어 넣었다.
이걸로 입 닫아줘. 장비 수리비라고 생각하고.
도현은 주머니를 받아들지 않았다. 대신 태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분노보다 깊은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도현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스패너를 집어 들고 몸을 돌렸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난 경고했어.
도현은 작업복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부품을 꺼내 탁자 위에 툭 던졌다. 진은으로 코팅된 강화 트리거였다. 태윤의 검에 장착하면 영력 방출 효율을 높여주는 고가의 부품이었다. 도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은신처를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태윤은 벽에 기댄 채 바닥으로 주르르 미끄러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하진이 어느새 다가와 태윤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무서웠어?
하진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태윤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하진의 손이 태윤의 턱을 잡아 강제로 시선을 맞췄다.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진의 눈동자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태윤의 창백한 입술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착한 아이네. 나를 지켜주기도 하고.
하진의 손가락이 태윤의 뺨을 타고 내려가 손등 위에 멈췄다. 태윤은 몸을 떨며 손을 빼려 했지만, 하진의 악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하진은 태윤의 손등을 들어 올려 자신의 입술 쪽으로 가져갔다.
이건 상이야.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하진의 혀끝이 태윤의 손등 위를 느릿하게 핥고 지나갔다. 뜨거운 불에 데인 듯한 통증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졌다. 태윤은 짧은 신음과 함께 몸을 뒤틀었다. 하진이 입술을 떼자, 태윤의 하얀 손등 위로 검은색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뱀이 똬리를 튼 듯 기괴한 형태의 계약 낙인이었다.
낙인이 박힌 자리가 화끈거리며 맥박에 맞춰 진동했다. 태윤은 자신의 손등을 움켜쥐며 숨을 몰아쉬었다. 영력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느낌에 눈앞이 잠시 흐릿해졌다. 하진은 만족스러운 듯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태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넌 나 없이 못 살아.
하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슴 안쪽의 펜던트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동시에 은신처 외부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려왔다. 영맥 수치를 측정하는 탐지기의 경고음이었다. 태윤은 반사적으로 창밖을 보았다.
어둠이 깔린 미명가 골목 끝에서 푸른색 경광등이 번쩍이고 있었다. 성역 센터의 정화 차량이었다. 차 문이 열리고 단정한 제복 차림의 여자가 내렸다. 윤세희였다. 그녀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태윤의 은신처가 있는 건물을 응시했다. 세희의 손에는 이미 영식 술법이 깃든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태윤은 하진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빨리 숨어.
하진은 대답 대신 태윤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듯 몸을 굽혔다. 그의 형체가 안개처럼 흩어지며 태윤의 발밑으로 사라졌다. 태윤은 탁자 위에 놓인 진은 트리거를 낚아채 검에 장착했다. 금속이 맞물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구두 굽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세희의 발소리였다. 태윤은 문동자를 굳게 닫고 문 쪽으로 검 끝을 겨누었다. 손등의 낙인이 타는 듯한 통증을 내뱉으며 검은 빛을 발했다.
쾅, 문이 부서지며 세희가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강태윤 선배, 거기 있어?
세희의 단검이 태윤의 목바짝 앞까지 날아와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비정상적인 영력 파동을 감지하고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세희의 시선이 태윤의 손등에 새겨진 검은 낙인에 머물렀다. 그녀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선배, 손등에 그건 뭐야.
세희가 단검을 고쳐 쥐며 한 걸음 다가왔다. 태윤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러 그녀의 단검을 쳐냈다. 금속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태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림자 속에서 하진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세희의 등 뒤로 정화 대원들이 들이닥치며 복도를 가득 메웠다.
비켜, 윤세희.
태윤은 검을 낮게 깔며 자세를 잡았다. 세희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고였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영력을 단검에 주입했다. 푸른색 불꽃이 그녀의 무기를 감싸 안았다.
정화 위원회 명령이야. 강태윤, 넌 지금부터 긴급 체포 대상이다.
세희가 바닥을 박차며 태윤을 향해 도약했다. 단검의 끝이 태윤의 심장을 정조준했다. 태윤은 하진이 남긴 계약의 통증을 견디며 진은 검을 비스듬히 세워 올렸다.
방 안의 공기가 두 사람의 영력이 충돌하며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