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금속판 위에서 점멸하는 붉은 빛이 복도의 어둠을 잘게 쪼개어 놓았다. 윤세희는 문지방을 넘지 않은 채 멈춰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영력 탐지기가 비명처럼 날카로운 경고음을 뱉어냈다. 태윤은 문고리를 쥔 손등에 힘을 주었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이 어깨를 타고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세희의 시선은 태윤의 얼굴을 지나 방 안의 짙은 그늘을 향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무테안경 너머로 서늘한 안광이 번뜩였다.
비켜줘, 태윤 씨.
세희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평소의 다정함은 찾아볼 수 없는, 성역 센터 엘리트 퇴마사의 어조였다. 태윤은 문틈을 좁히며 몸으로 입구를 가로막았다. 낡은 문틀이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등 뒤에서 서늘한 한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하진이 그곳에 있었다. 그림자 속에 숨어 숨을 죽인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그가 느껴졌다. 입안이 바짝 말라붙어 혀끝이 입천장에 달라붙는 감각이 생생했다.
여긴 내 개인 공간이야. 영계 관리국이라도 영장 없이는 못 들어와.
태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자신의 호흡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숨을 참았다. 세희는 대답 대신 탐지기를 들어 올렸다. 기계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파동이 태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탐지기의 바늘이 한계치를 넘어서며 미친 듯이 요동쳤다. 세희가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어 올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태윤의 어깨 너머, 서하진이 숨어 있는 어둠의 한 점을 정확히 꿰뚫었다.
방금 영맥 반응이 감지됐어. 그것도 아주 불길하고 오래된 종류의 기운이.
그녀의 발이 바닥을 딛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태윤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제복 너머로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은 차가웠다. 세희의 시선이 태윤의 손목으로 향했다. 소매 아래로 어렴풋이 보이는 검은 낙인이 그녀의 눈에 박혔다. 세희의 미간이 좁아지며 눈가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태윤은 급히 손을 떼고 소매를 끌어 내렸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려 셔츠를 축축하게 적셨다.
태윤 씨, 당신 뒤에 숨긴 게 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세희가 허리춤에 찬 정화 단검으로 손을 뻗었다. 태윤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만약 하진이 들킨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관리국의 채무 승계법도,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진실도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힐 터였다. 무엇보다 서하진이라는 존재가 정화라는 명목하에 소멸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태윤의 심장 근처에 있는 펜던트가 하진의 기운에 반응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방 안쪽에서는 하진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벽을 짚은 그의 손가락이 흐릿하게 번지며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는 자신의 본질을 숨기기 위해 기억의 안개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영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무리하게 술법을 전개하자 영핵이 비명을 질렀다. 하진의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숨을 내뱉을 때마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 흩어졌다. 그는 고통을 참으려는 듯 자신의 팔을 손톱이 박히도록 움켜쥐었다.
그림자가 일렁이며 벽면을 타고 기어 올랐다. 안개는 희뿌연 연기처럼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세희는 코끝을 찡그리며 손을 휘저었다. 비릿한 냄새가 섞인 냉기가 그녀의 발목을 감싸 안았다. 태윤은 하진의 고통을 직감했다. 낙인을 통해 전달되는 서늘한 통증이 가슴 한가운데를 날카롭게 베고 지나갔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며 세희의 앞을 막아섰다.
아무것도 없어. 그냥 장비가 오작동하는 거야.
거짓말은 서툴렀다. 세희의 눈동자에 어린 신뢰가 금이 가며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는 단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 영력이 칼날을 따라 흐르며 주변의 안개를 강제로 밀어냈다. 세희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상급 퇴마사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실의 눈'이었다. 그녀의 시야 속에서 모든 환상이 걷히고 숨겨진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태윤 씨, 비켜. 이건 명령이야.
세희가 태윤의 가슴팍을 밀치며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태윤은 그녀를 붙잡으려 했으나, 세희의 몸에서 방출된 영적 충격파에 밀려 벽에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어깨에 예리한 통증이 박혔다. 세희의 단검이 안개의 중심부를 향해 내리꽂히려는 찰나였다.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나며 세희의 발끝을 낚아챘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검은 손들이 그녀의 발목을 단단히 고정했다. 세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단검을 휘둘러 그림자를 베어내려 했으나, 칼날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태윤의 그림자 속에서 하진의 형체가 서서히 떠올랐다. 그의 눈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전신에서는 검은 연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진이 세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냉기가 그녀의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돌진했다. 세희의 비명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목구멍 속에 갇혔다. 그녀의 동공이 급격히 확장되며 초점을 잃었다. 하진의 영력이 그녀의 의식을 강제로 헤집고 들어가 100년 전의 기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옥의 풍경이었다. 태화로의 고층 빌딩이 세워지기 전, 그곳에는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현장이 있었다. 평화롭게 공존하던 영체들을 향해 인간들이 영식 술법을 쏟아붓고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한 귀신이 울부짖으며 소멸하는 장면이 세희의 뇌리에 박혔다. 퇴마사들이 '정화'라는 이름 아래 저지른 것은 구원이 아니라 명백한 학살이었다.
세희의 무릎이 꺾이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파노라마는 멈추지 않았다. 관리국의 초대 위원들이 영맥을 조작해 대재앙을 일으키는 장면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서하진과 그의 동료들이 배신당해 그림자 속으로 매몰되는 과정이 처절하게 재생되었다. 세희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진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의 목소리는 수천 명의 망령이 동시에 속삭이는 것처럼 기괴하게 울렸다.
너희가 믿어온 정의의 밑바닥을 봐.
세희의 손에서 탐지기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붉은 점멸등이 꺼지고 방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태윤은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세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는 이제 공포가 아닌, 거대한 진실 앞에 무너진 허망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희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제복 가슴팍에 달린 성역 센터 휘장을 움켜쥐었다.
이건... 우리가 배운 역사와 달라.
세희가 힘겹게 입술을 뗐다. 하진은 그녀를 놓아주고 태윤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그의 실체는 이전보다 더 투명해져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태윤은 본능적으로 하진의 팔을 붙잡아 자신의 영력을 나누어 주었다. 낙인을 통해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세희는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관리국이 숨긴 건 귀신이 아니었어. 자신들의 죄악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