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을 가르며 쏟아지는 백색 섬광이 시야를 난도질했다. 정화 위원회 소속 특수 요원들이 내뿜는 영식 술법은 공기를 태우며 비릿한 오존 냄새를 풍겼다. 강태윤은 본능적으로 서하진의 허리를 낚아챘다. 품에 닿는 감촉이 얼음물에 손을 담근 듯 차가웠다. 등 뒤로 불길한 열기가 훅 끼쳤다.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가구가 비틀리는 굉음이 고막을 찔렀다. 퇴로 따위는 계산할 틈도 없었다. 그는 깨진 유리 파편이 흩날리는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허공에 뜬 몸이 중력에 붙잡혔다. 태윤은 남은 영력을 쥐어짜 발끝으로 집중시켰다. 영자 도약을 위한 술식이 허공에 푸른 궤적을 그리려던 순간이었다. 귀를 찢는 고주파 소음이 도시의 밤을 흔들었다. 관리국이 설치한 방해 전파가 영맥의 흐름을 뒤틀어 놓았다. 발밑을 받쳐줘야 할 영력의 발판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미명가 외곽의 폐기물 적치장이 아가리를 벌린 채 다가왔다. 썩은 비린내와 녹슨 철근들이 뒤섞인 쓰레기 더미 위로 몸이 처박혔다. 왼쪽 다리에서 둔탁한 파열음이 들렸다. 비명은 목구멍 안쪽으로 억눌려 삼켜졌다. 폐부로 밀려드는 먼지와 매연에 숨이 턱 막혔다. 태윤은 흙바닥을 짚으며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왼쪽 정강이에서 시작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까지 번졌다. 뼈가 어긋난 자리가 화상을 입은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하진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형체는 이미 반투명하게 변해 바닥의 그림자와 경계가 모호했다. 실핏줄처럼 돋아났던 영체의 윤곽이 공기 중으로 흐릿하게 흩어졌다. 소멸이 눈앞이었다. 태윤은 이를 악물고 기어가 하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가락이 그의 몸을 통과해 차가운 바닥을 긁었다. 잡히지 않는 감각에 손등의 핏줄이 곤두섰다.
멀리서 군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위압적인 금속음이었다. 서치라이트의 불빛이 쓰레기 산의 능선을 훑으며 다가왔다. 하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목소리는 형체만큼이나 가늘어 금방이라도 끊길 듯했다.
죽으려고 작정했어?
비웃음 섞인 타박이었지만 그 끝에는 물기가 배어 있었다. 하진은 투명해진 손으로 태윤의 가슴팍을 힘없이 밀어냈다. 밀어내는 손길에는 무게감이 전혀 없었다.
제발 나를 그냥 놔줘. 이대로 가면 둘 다 정화 대상이야.
태윤은 대답 대신 품 안에서 단검을 꺼냈다. 부모님이 남긴 유품이자 진실의 편린이 담긴 은빛 날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칼날이 살점을 가르는 생경한 감각이 손목을 타고 흘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왼쪽 손목을 깊게 그었다. 뜨거운 선혈이 솟구쳐 올랐다.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태윤은 하진의 턱을 잡아 강제로 벌렸다.
그의 입술 위로 붉은 액체가 울컥 흘러넘쳤다. 퇴마사의 혈액에 담긴 순수한 영력이 영체의 본질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억지로 삼켜진 피가 그의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며 흐릿하던 형체를 다시 고정했다. 피를 내어준 태윤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점멸했다. 머릿속이 윙윙거리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수명을 갉아먹는 행위임을 알고 있었으나 멈출 생각은 없었다.
하진의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검은 낙인이 태윤의 손등에서 붉게 타오르며 반응했다. 두 존재의 영혼이 피를 매개로 뒤섞였다. 하진은 고통스러운 듯 태윤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그의 손톱이 태윤의 팔뚝을 파고들었지만 아픔보다는 안도감이 앞섰다. 태윤은 하진의 창백한 뺨을 감싸 쥐며 시선을 고정했다.
요원들의 서치라이트가 바로 머리 위까지 다가왔다. 거친 숨소리와 무전기 너머의 명령어가 선명하게 들렸다. 태윤은 부러진 다리를 끌며 하진을 벽 너머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이 잘게 떨려왔다. 체온이 빠져나간 자리에 소름 끼치는 한기가 파고들었다.
폐허 저편에서 거친 엔진 소리가 고요를 찢었다. 일반적인 내연기관의 소음이 아니었다. 일정한 파동을 그리며 대기를 울리는 그 진동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맥박과도 같았다. 영력이 섞인 엔진음이 지면을 따라 태윤의 발밑까지 전해졌다.
낡은 트럭 한 대가 쓰레기 더미를 돌파하며 나타났다. 전조등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을 질주하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그림자 같았다. 트럭은 속력을 줄이지 않고 요원들이 포진한 바리케이드를 향해 돌진했다. 금속이 찌그러지는 굉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먼지 구름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최도현이었다. 그는 기름때 묻은 모자를 눌러쓴 채 핸들을 거칠게 꺾었다. 트럭의 뒷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태윤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도현은 조수석 문을 걷어차듯 열어젖혔다. 그의 입에 물린 궐련형 영석에서 보랏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안 타고 뭐 해!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도현의 고함에 태윤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하진을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 이어 자신의 몸을 트럭 안으로 던지듯 실었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트럭은 굉음을 내며 튀어 나갔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력 파동이 공기를 왜곡하며 추격자들의 시야를 가렸다.
트럭은 미명가의 복잡한 골목을 미친 듯이 누볐다. 뒤편에서 관리국의 추적 미사일이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뒤를 쫓았다. 도현은 거울로 뒤를 살피며 기어를 변속했다. 트럭의 엔진 소리가 한층 더 높은 음역으로 변하며 차체 주위에 옅은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태윤은 뒷좌석 바닥에 쓰러진 채 하진의 상태를 살폈다. 피를 마신 덕분에 하진의 형체는 유지되고 있었으나 의식은 혼미해 보였다. 태윤의 손등에 새겨진 낙인이 다시 한번 강하게 점멸했다. 수명을 바친 대가가 몸 안의 장기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차체는 진혼의 숲 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결계가 눈앞에서 푸른 빛을 내뿜으며 가로막고 있었다. 도현은 속도를 줄이는 대신 대시보드 위의 붉은 버튼을 눌렀다. 트럭의 엔진이 폭주하듯 울부짖으며 차체를 감싼 영력이 결계의 주파수와 맞물렸다.
태윤은 하진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숲의 검은 그림자가 트럭을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하늘 위에서 거대한 영안이 떠올라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백색 탑의 감시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도현은 핸들을 꽉 쥐며 숲의 심장부를 향해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차체가 결계를 통과하는 순간 날카로운 경보음이 조문석을 가득 채웠다. 태윤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트럭의 앞 유리에 금이 가며 거대한 압력이 내부를 짓눌렀다. 하진의 몸이 다시 한번 빛을 내며 태윤의 품 안에서 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태윤의 목걸이 펜던트가 하진의 영체에 반응하여 미세하게 진동했다. 펜던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트럭 내부를 하얗게 뒤덮었다. 도현의 욕설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폭발음이 고막을 때렸다. 태윤은 하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의 어깨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창밖의 풍경이 뒤틀리며 신월구의 지형이 실시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막다른 길이었던 곳이 늪으로 변하고 고층 빌딩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공간의 왜곡이 차체를 찢어발기려 들었다. 태윤은 어금니를 사려 물며 정신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진실과 서하진이 품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야만 했다. 태윤의 영력이 폭주하며 은신처의 결계를 대신해 트럭의 외벽을 감쌌다. 그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며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숲의 심장부에 가까워질수록 공기의 밀도가 높아졌다. 트럭의 엔진이 한계를 맞이한 듯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덜컥거렸다. 도현은 핸들을 놓지 않은 채 전방의 나무들을 들이받으며 전진했다. 거대한 고목들이 비현실적인 소리를 내며 양옆으로 갈라졌다.
하진이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에는 태윤이 본 적 없는 깊은 슬픔과 경고가 담겨 있었다. 하진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며 소리 없는 문장을 만들어냈다. 태윤은 본능적으로 그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다.
도망쳐, 태윤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트럭의 뒷바퀴가 공중에 떴다. 지면이 거대한 구멍처럼 꺼지며 차체를 집어삼켰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감각만이 전신을 지배했다. 태윤은 마지막 힘을 다해 하진의 손을 꽉 잡았다.
어둠의 끝에서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들려왔다. 트럭의 지붕 위로 정체불명의 그림자들이 내려앉는 소리였다. 관리국의 요원들이 아니었다. 훨씬 더 무겁고 썩은 냄새를 풍기는 존재들이었다. 도현의 짧은 비명이 엔진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태윤은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꽉 쥐었다.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붉은 눈동자가 일제히 빛을 발하며 그들을 향해 좁혀왔다. 그는 하진을 등 뒤로 숨기며 부러진 다리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검날이 공기를 가르며 차가운 은빛 궤적을 그렸다.
"여기서부터는 내 허락 없이는 못 지나간다."
태윤이 피 섞인 침을 뱉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