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비릿한 금속 음이 치밀어 올랐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것은 회색빛으로 바스라지는 천장의 곰팡이 자국이었다. 차가운 한기가 노출된 피부를 타고 뱀처럼 기어올랐다. 신월구 외곽, 진혼의 숲 깊은 곳에 숨겨진 도현의 은신처는 낡은 기름 냄새와 오래된 영석의 잔향으로 가득했다. 오른쪽 다리에서 시작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찔러댔다. 입술을 달싹이자 갈라진 살점 사이로 마른 피맛이 났다.
손끝이 바닥의 거친 시멘트 질감을 훑었다. 옆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서하진이 허공에 손을 뻗은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푸르스름한 연기 같은 파편들이 흩어졌다. 그것은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처럼 투명하면서도 슬픈 빛을 내뿜었다. 하진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태윤이 깨어난 것을 알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허공을 부유하는 기억의 조각들은 기괴한 형상을 그리며 교차했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간신히 상체를 비스듬히 세우자 가슴팍에 걸린 펜던트가 묵직하게 흔들렸다. 부모님이 남긴 유일한 유품이자, 정체 모를 떨림을 멈추지 않는 금속 덩어리였다. 하진의 손끝이 허공을 가르자 조각 하나가 태윤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 안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일그러진 채 나타났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녀, 강태윤의 기억 속에 박제된 부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들은 실험실로 보이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 사방이 투명한 강화 유리로 막힌 그곳에서 부모님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유리의 건너편에는 백색 탑의 문양이 새겨진 제복을 입은 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차트를 넘기며 기계의 레버를 당겼다. 유리 너머로 붉은 액체가 흘러 들어갔다. 부모님의 신체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입안이 바짝 말라붙었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아내의 눈을 가렸다. 어머니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 역시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을 뿐이었다. 기계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하진의 목소리가 귓가를 낮게 훑고 지나갔다.
"보여? 네가 믿었던 사고의 실체야."
하진의 냉소적인 어조가 얼음 송곳처럼 심장을 찔렀다. 화면 속의 부모님은 더 이상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영력이 기계 장치로 빨려 들어갔다. 관리국 놈들은 그것을 정제된 영석 케이스에 담았다. 사고로 죽었다던 부모님은 사실 산 채로 분해되어 도시의 연료가 된 셈이었다.
손등의 핏줄이 불거졌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주 먼 곳, 혹은 미래의 누군가를 보듯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입술이 느리게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태윤은 그 문장을 읽어낼 수 있었다. 살아야 한다, 태윤아. 그것은 유언이라기보다 저주에 가까운 당부였다.
"그들이 우리 부모님을 단순한 연료로 썼다고?"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긁혀 나왔다. 하진이 비스듬히 고개를 꺾으며 태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동정 대신 기괴한 고양감이 서려 있었다. 하진은 손가락을 튕겨 마지막 기억 조각을 터뜨렸다. 파편들이 태윤의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며 차가운 안개로 변했다.
"부모님은 스스로 그 방에 들어갔어. 너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준 거지. 관리국은 네 영력을 담보로 협박했거든."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발끝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올라 전신을 잠식했다. 가슴 속의 영핵이 미친 듯이 박동하며 주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벽면에 걸려 있던 퇴마용 도구들이 덜컹거리며 불협화음을 냈다. 은신처를 감싸고 있던 결계가 과부하로 인해 지직거리는 소음을 내뿜었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슬픔은 순식간에 휘발되고 그 자리를 지독한 살의가 채웠다. 손끝에서 스며 나온 은빛 영력이 뱀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며 목재 가구들을 갉아먹었다. 하진은 그 파괴적인 에너지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듯 팔짱을 꼈다. 태윤의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방 안의 기압은 낮아졌다.
바닥에 놓인 강화 장비들이 영력의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펜던트가 태윤의 가슴 위에서 미친 듯이 진동하며 빛을 발했다. 그 빛은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내뿜었던 영력의 색과 완벽히 일치했다. 관리국에 대한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태윤의 몸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은신처의 벽면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진혼의 숲을 보호하던 도현의 은폐 결계가 유리 조각처럼 공중에서 비산했다. 억눌려 있던 영력이 하늘을 향해 거대한 기둥을 그리며 치솟았다. 숲의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며 꺾였다. 태윤은 자신의 힘에 먹혀 들어가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먼 곳에서 대기가 진동했다. 신월구 중심부, 구름 위로 솟아오른 백색 탑의 꼭대기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계 장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숲까지 들려왔다.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갈라지더니, 탑의 최상층에서 거대한 영안이 서서히 눈을 떴다. 그것은 태윤의 펜던트와 똑같은 황금빛을 내뿜으며 대지를 훑었다.
영안의 시선이 진혼의 숲 한복판, 태윤이 서 있는 지점에 고정되었다. 탑의 꼭대기에서 응축된 에너지가 푸른 불꽃을 일으키며 타올랐다. 칠성 의회의 명령이 담긴 영자 파동이 도시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자비 없는 정화의 신호였다.
타겟 확인. 즉시 소멸시켜라.
하늘을 가로지르는 기계적인 음성이 숲의 고요를 완전히 깨트렸다. 태윤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눈동자를 응시했다. 손등의 낙인이 검게 타오르며 살을 파고들었다. 하진이 태윤의 어깨를 짚으며 낮게 속삭였다.
"드디어 그들이 움직이네."
하진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얼음 같은 한기가 스며들었다. 멀리서 관리국의 정화 요원들이 전개하는 영자 도약의 빛이 숲 곳곳에서 번쩍였다. 포위망이 좁혀오는 소리가 들렸다. 태윤은 부러진 다리에 힘을 주며 바닥에 떨어진 진은의 검을 쥐었다. 검날이 주인과 공명하며 파르르 떨렸다. 태윤은 검자루를 부서질 듯 꽉 움켜쥐었다.
금속성 마찰음이 고요한 숲에 파열음을 냈다. 서하진은 뒤로 물러나며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의 영체가 대기의 흐름을 타고 희미하게 일렁였다. 태윤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차가운 공기에 식어갔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검자루의 감촉이 생생했다.
먼발치에서 낙엽을 밟는 발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건조한, 감정이 배제된 발소리였다. 관리국 소속의 사냥개들이 후각을 세우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태윤은 호흡을 가늘게 내뱉으며 자세를 낮췄다. 검 끝이 바닥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그림자 사이로 제복을 입은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오직 명령만을 수행하는 정화의 기계들이었다. 선두에 선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대기가 일그러지며 영식 술법이 전개되었다. 푸른 회로도가 공중에 그려지며 태윤을 압박해왔다.
태윤의 발바닥이 지면을 박차고 나갔다. 은빛 궤적이 어둠을 가르며 허공을 수놓았다. 검날이 공중의 회로도를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챙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술법이 산산조각 났다. 태윤의 몸은 이미 다음 목표를 향해 회전하고 있었다.
"죽지 마, 강태윤."
서하진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그것은 격려라기보다 저주 섞인 조롱에 가까웠다. 태윤은 대답 대신 검을 고쳐 쥐었다. 적들의 포위망이 좁혀질수록 그의 감각은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 숲을 가득 채운 한기와 살의가 피부를 바늘처럼 찔러댔다.
공중에 뜬 거대한 영안이 다시 한번 점멸했다. 백색 탑에서 발사된 정화의 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태윤은 옆으로 몸을 날리며 빛의 궤적을 피했다. 그가 서 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증발하며 거대한 구덩이가 패였다.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검을 쥔 손가락 끝이 저려왔다. 영력을 끌어다 쓸수록 수명이 깎여나가는 감각이 선명했다. 심장 부근이 타들어 가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었다. 부모님의 마지막 얼굴이 망막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는 그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비켜."
태윤의 낮은 명령과 함께 진은의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앞을 가로막던 요원의 가슴팍에서 불꽃이 튀었다. 강화 수트가 찢겨 나가며 남자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적들은 끝도 없이 몰려들었다. 숲의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영안이 붉게 타오르며 태윤을 겨냥했다.
서하진은 나무 뒤에 기대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태윤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따라 하진의 시선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소멸을 예감하면서도 눈앞의 인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영자 도약의 빛이 점점 더 조밀해졌다. 태윤은 숨을 들이키며 검에 남은 모든 영력을 쏟아부었다. 검날이 눈부신 백색으로 타오르며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그것은 어둠에 잠긴 신월구를 뚫고 나가는 단 하나의 빛줄기였다.
태윤의 시선이 숲 너머,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솟은 백색 탑에 고정되었다. 저곳으로 가야 했다. 부모님을 죽이고 자신을 빚더미에 앉힌 그들의 심장부로.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근육이 파르르 떨리며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렸다.
"전부 베어 넘겨주지."
태윤의 발치에서 거대한 영력의 폭풍이 일어났다. 그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요원들의 물결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은빛 검광이 숲의 어둠을 찢어발기며 길을 냈다. 서하진은 그 뒷모습을 보며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첫 번째 요원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던 태윤의 손이 멈칫했다. 숲의 대기가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결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의 목소리였다.
"태윤아, 그만해."
검을 쥔 태윤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버지는 슬픈 눈으로 태윤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태윤의 눈동자가 혼란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아버지?"
서하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그는 태윤의 앞으로 뛰어들며 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하진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아버지의 형상은 연기처럼 흩어지더니 다시 태윤의 바로 등 뒤에서 나타났다.
"함정이야, 강태윤! 뒤를 봐!"
하진의 비명과 동시에 아버지의 손이 태윤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태윤은 입을 벌린 채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의 손은 실체가 아닌, 검은 그림자로 이루어진 칼날이었다. 피 대신 검은 영액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살아야 한다고 했잖니."
아버지가 태윤의 귀에 대고 싸늘하게 속삭였다. 태윤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다. 펜던트가 핏빛으로 물들며 마지막 진동을 토해냈다. 서하진이 절규하며 태윤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관리국의 정화 요원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태윤은 무너지는 무릎을 간신히 버티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아버지는 어느새 백색 탑의 제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로 변해 있었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태윤의 가슴에서 그림자 칼날을 뽑아냈다. 태윤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실험체 03호, 회수를 시작한다."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의식을 잃어가는 태윤의 고막을 울렸다. 하진의 일그러진 얼굴이 멀어지며 세상이 암전되었다. 태윤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바닥에 떨어진 진은의 검자루를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멀게만 느껴졌다.
멀리서 백색 탑의 영안이 승리의 빛을 내뿜으며 숲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하진의 영체가 비명을 지르며 대기 중으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태윤은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하진의 마지막 눈빛을 기억에 새겼다. 그것은 공포가 아닌, 지독한 증오였다.
남자는 태윤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며 낮게 읊조렸다.
"네 부모는 실패작이었지만, 너는 꽤 쓸만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