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웅, 쿠웅.
정문을 부수려는 듯한 진동이 고요한 복도를 갈기갈기 찢었다. 킬리안의 미간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좁혀졌다. 먼지가 섞인 불쾌한 진동은 그의 결벽증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손등의 힘줄이 툭 불거지며 하얗게 질렸다. 품 안에 머물던 온기가 움찔하며 몸을 바짝 웅크렸다. 방금 전까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아이리스였다.
마력의 파동이 급격히 가라앉으며 다시 하얀 털이 돋아났다. 저주는 잔인할 정도로 정확한 타이밍에 그녀를 짐승의 틀에 가두었다. 아이리스는 다시 작고 무력한 고양이로 돌아갔다. 킬리안은 구겨진 셔츠 깃을 정돈하며 차가운 시선으로 문을 보았다. 침입자의 흔적을 씻어내기도 전에 불청객이 닥친 셈이었다. 서재 문틈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가 피부를 긁었다.
레나르트가 창백한 안색으로 서재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은 문고리를 잡은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황실 조사관입니다.”
집사의 목소리가 가늘게 끊겼다. 킬리안은 대답 대신 아이리스를 소파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두꺼운 벨벳 쿠션이 그녀의 작은 몸을 집어삼켰다. 아이리스는 숨을 죽인 채 발톱으로 소파 천을 움켜쥐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긴장감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복도 끝에서부터 규칙적인 갑옷의 마찰음이 다가왔다.
공기를 짓누르는 금속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제국 근위대, 실버 나이트의 등장이었다. 선두에 선 남자가 거침없이 서재 안으로 발을 디뎠다. 세바스티안 크로이츠였다. 그는 집요한 눈빛으로 서재 안을 훑으며 입가를 비틀었다.
“공작 각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세바스티안의 목소리가 천장에 부딪혀 낮게 깔렸다. 그는 사과를 입에 담으면서도 눈으로는 서재 구석구석을 훑었다. 킬리안은 자리에 앉지 않은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절대 영역이 세바스티안의 발끝에서 멈춰 섰다. 불결한 것이 닿았다는 듯 킬리안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목 안쪽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기분이었다.
“황명을 수행 중이라 가택 수색이 불가피합니다.”
세바스티안이 품에서 황금 인장이 찍힌 문서를 꺼내 보였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금서고를 침입한 대역죄인의 마력 반응이 이곳으로 향했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시선이 킬리안의 소매에 묻은 작은 잉크 자국에 머물렀다. 아이리스는 소파 밑에서 털을 바짝 세웠다. 세바스티안, 저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에반스 가문의 몰락이 결정되던 날이었다. 아버지를 거칠게 포박하던 자의 손길이 떠올랐다. 그의 손에 들린 마력 탐지기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회전했다. 루비아가 내뿜는 진동이 바닥을 타고 아이리스의 발바닥에 닿았다. 뜨거운 열기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각하의 저택은 제국에서 가장 청정하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세바스티안이 한 걸음 더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그런 곳에 쥐새끼 한 마리가 숨어들었다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압박이었다. 그는 킬리안의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한 듯 근위대에게 수색을 명했다. 철갑 장화를 신은 병사들이 서재의 책장을 거칠게 뒤집기 시작했다. 귀한 마법서들이 바닥으로 추락하며 먼지를 일으켰다.
킬리안의 턱 근육이 단단하게 뭉쳤다. 자신의 규칙이 무너지는 소리에 그의 손끝이 떨렸다. 세바스티안은 그 반응을 즐기듯 탐지기의 출력을 높였다. 탐지기 끝에 박힌 루비아가 붉은빛을 점멸하며 울어댔다.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제국법 제12조를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세바스티안이 킬리안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마수화 징후가 있는 모든 생물은 즉각 인도되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는 탐지기를 허공에 휘두르며 킬리안을 압박했다. 인간이 짐승의 탈을 쓴 것은 그 자체로 오염이며 범죄라는 논리였다. 아이리스는 콧등을 스치는 서늘한 공기에 몸을 떨었다. 목덜미의 털이 쭈뼛 섰다.
저 탐지기가 닿는 순간, 자신의 정체는 만천하에 드러날 터였다. 에반스 가문의 마지막 핏줄이 유해 조수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광경. 상상만으로도 목 안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킬리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고 위협적이었다. 서재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급강하했다.
“내 허락 없이 기물을 파손한 대가는 가볍지 않을 거다.”
킬리안의 그림자가 세바스티안의 발치를 뒤덮었다. 공포를 느낀 병사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굳어버렸다. 하지만 세바스티안은 물러서지 않고 탐지기를 다시 치켜들었다. 각하께서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시니 오히려 확신이 생긴다는 투였다. 그의 눈이 번들거리며 방 안의 유일한 가구인 소파를 향했다.
아이리스는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소파 등받이에 막혀 옴짝달싹 못 했다. 탐지기의 회전 속도가 빨라지며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세바스티안의 발소리가 카펫을 밟으며 다가왔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아이리스의 시야에 세바스티안의 가죽 장화가 들어왔다. 거친 가죽 냄새가 폐부를 찔렀다.
“이 근처에서 아주 강력한 변이 마력이 느껴지는군요.”
세바스티안의 손이 소파 쿠션 틈새를 향해 뻗어 나왔다.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발톱을 세워 소파 가죽을 찢었다. 그 순간, 킬리안의 구두가 세바스티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킬리안의 손이 허리춤에 걸린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서재 내의 공기가 얼어붙을 듯 차갑게 식어 내려갔다.
세바스티안의 탐지기가 아이리스가 숨은 소파 쪽을 향해 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기계음이 비명처럼 서재 안을 가득 메웠다. 킬리안이 세바스티안의 앞을 가로막으며 자신의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푸르스름한 검신이 붉은 광선을 가르며 섬광을 내뿜었다. 아이리스는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붉은 광선이 그녀의 하얀 털끝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다. 세바스티안의 손가락이 쿠션 너머 아이리스의 꼬리 끝에 닿으려던 찰나였다. 킬리안의 차가운 목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내 사유물에 손을 대지 마라, 조사관.”
킬리안의 검 끝이 세바스티안의 목울대를 정확히 겨누었다. 세바스티안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지며 탐지기를 든 손이 멈췄다. 붉은 빛은 여전히 아이리스의 몸을 훑으며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정적이 서재를 가득 메운 가운데 킬리안의 절대 영역이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세바스티안이 들고 있던 마력 탐지기의 루비아가 쩍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이것은 정당한 공무 집행입니다, 공작.”
세바스티안이 이를 악물며 대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킬리안은 대답 대신 검을 한 치 더 밀어 넣었다. 날카로운 날이 세바스티안의 피부를 살짝 긁고 지나갔다. 핏방울이 맺히기도 전에 킬리안의 마력이 상처 부위를 정화하듯 하얗게 태워버렸다.
“이 저택의 규칙은 제국법보다 우선한다.”
킬리안의 시선이 소파 아래 숨은 아이리스를 향했다. 그녀의 보석 같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세바스티안은 깨진 탐지기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듯 품 안에서 또 다른 장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황실 전용 마력 봉인구였다.
“그 고양이가 정말 각하의 사유물이라면, 지금 즉시 등록 번호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세바스티안의 손이 아이리스의 목덜미를 낚아채기 위해 소파 틈새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이리스는 필사적으로 몸을 웅크렸으나 가죽 장갑의 감촉이 등에 닿았다. 소름 끼치는 공포가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때, 킬리안의 손이 세바스티안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서재 안에 울려 퍼졌다.
“아나테마의 저주를 받은 존재가 여기 있다는 증거를 내놓으시지.”
킬리안의 목소리는 이제껏 들어본 것 중 가장 낮고 서늘했다. 그는 세바스티안을 그대로 문밖으로 밀쳐냈다. 철갑을 두른 병사들이 우르르 뒤로 밀려났다. 세바스티안은 바닥을 구르면서도 소파 쪽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의 눈에는 확신에 찬 집요함이 서려 있었다.
“저 짐승의 눈을 보십시오. 인간의 지성이 담긴 저 눈을.”
아이리스는 킬리안의 등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킬리안이 천천히 몸을 돌려 아이리스를 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한없이 작고 초라했다. 킬리안이 아이리스의 목덜미를 잡아 올리며 그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아이리스의 눈동자 속에서 인간의 지성을 읽어낸 킬리안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내 눈에는 그저 길 잃은 유해 조수로만 보이는군.”
킬리안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리스를 자신의 망토 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그의 심장 박동이 망토를 통해 아이리스의 뺨에 전달되었다. 규칙적이고 차가운 진동이었다. 세바스티안은 부서진 탐지기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품속에서 붉은 신호탄을 꺼내 들었다.
“황실 근위대 전체가 이 저택을 포위할 것입니다.”
세바스티안이 신호탄을 터뜨리려는 순간, 킬리안의 손가락이 허공을 갈랐다. 무영창 마법이었다. 세바스티안의 손에 들려 있던 신호탄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서재 안에 있던 모든 근위병이 숨을 들이켰다. 무영창 마법은 제국에서 금기시되는 흑마법의 징후였다.
“각하, 지금 무엇을 하신 겁니까.”
세바스티안의 목소리가 공포로 떨렸다. 킬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그의 절대 영역 내에서는 마나 스톤 없이도 마력을 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것은 황실 혈통만이 가진 비밀이자 금기였다.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오염으로 간주하여 소멸시킨다.”
킬리안이 손을 뻗자 서재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이리스는 망토 안에서 그의 허리춤을 앞발로 꽉 붙들었다. 킬리안의 손이 망토 위로 아이리스의 머리를 가볍게 눌렀다. 그것은 보호인 동시에 경고였다. 세바스티안과 병사들은 이제 출구 없는 방 안에 갇힌 꼴이 되었다.
아이리스는 킬리안의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세바스티안의 눈을 응시했다. 그 눈에는 죽음보다 더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킬리안의 마력이 서재 전체를 휘감으며 모든 빛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오직 킬리안의 푸른 눈동자만이 섬뜩하게 빛났다.
“정화가 시작될 시간이다.”
킬리안의 낮은 읊조림과 함께 서재 바닥에서부터 백색의 불꽃이 치솟았다. 세바스티안의 비명이 문밖으로 새어 나가기도 전에 공간은 완벽한 정적에 휩싸였다. 아이리스는 그의 품속에서 가늘게 떨며 눈을 감았다. 킬리안의 손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단하게 쓸어내렸다.
“이제 네 차례다, 고양이.”
킬리안이 아이리스를 망토 밖으로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실험체를 보는 듯한 집요함과 알 수 없는 흥미가 뒤섞여 있었다. 아이리스는 앞발로 테이블 위의 잉크를 찍어 종이에 에반스라는 글자를 비뚤게 적어 내려갔다.
킬리안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지며 종이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저택 전체에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외부에서 시작된 강력한 마력 파동이 서재의 창문을 산산조각 냈다. 파편이 쏟아지는 가운데 킬리안이 아이리스를 낚아채며 소리쳤다.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