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의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방금까지 몸을 적셨던 하수도의 찬물이 옷자락 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낙양의 아침은 짙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거대한 전장의 철문은 그 안개조차 뚫고 위압감을 뿜어냈다.
낙양 전장.
천하의 금전이 모이고 흩어지는 무림 경제의 심장부였다.
설무한은 품 안에서 위진악이 남긴 어음과 소여진의 인장을 꺼내 쥐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단전 깊은 곳에서 요동치는 한빙주의 냉기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철문 앞에 선 무사들이 거만한 시선으로 그를 훑었다.
남루한 행색과 젖은 머리카락은 영락없는 부랑자의 몰골이었다.
무사 하나가 코를 킁킁거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
"어디서 똥물을 뒤집어쓴 거지가 길을 막느냐."
설무한은 대답 대신 위진악의 인장이 찍힌 어음을 내밀었다.
무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어음을 낚아채듯 가져가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이내 안색이 굳어지더니 옆에 있던 동료와 눈빛을 교환했다.
"청운검문의 물건이군. 하지만 이미 계좌는 동결되었다."
"동결이라니."
설무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무사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어음을 바닥에 던졌다.
"정무맹의 명이다. 횡령범의 자산은 한 푼도 내줄 수 없다는 명령이 내려왔지."
종이 조각이 진흙탕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설무한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종이에 머물렀다.
제자들이 가로챈 자신의 명예와 세월이 그 종이 한 장에 짓밟히고 있었다.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동시에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입가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돌아가라. 아니면 관아에 넘겨주랴?"
무사가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윽박질렀다.
설무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푸른 빛으로 일렁였다.
발아래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쩍, 쩌적.
얼음이 얼어붙는 기괴한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무사들의 장화 끝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무사가 발을 떼려 했지만 이미 가죽 장화는 바닥과 하나가 된 상태였다.
설무한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밟는 보도블록마다 서릿발이 솟구치며 하얗게 변했다.
철문의 거대한 빗장이 차가운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설무한의 손바닥이 철문에 닿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문 전체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강철의 강도는 냉기 앞에서 유릿장처럼 취약해졌다.
그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수천 근에 달하는 철문이 산산조각 나며 안쪽으로 쏟아졌다.
파편이 바닥에 부딪히며 맑은 금속음을 냈다.
전장 내부의 관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따뜻한 실내 공기가 설무한의 냉기와 만나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냈다.
"누구냐! 감히 낙양 전장을 습격하다니!"
금박을 입힌 비단옷을 입은 중년인이 호통을 치며 나타났다.
전장의 책임자인 주지객이었다.
그는 설무한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입을 벌린 채 굳어버렸다.
"설…… 설무한?"
"내 돈을 찾으러 왔다."
설무한의 말 한마디에 주지객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이미 정무맹에서 압류 명령이 내려왔소. 우리는 법을 따를 뿐이오."
"법이라. 누구를 위한 법인가."
"이러지 마시오. 무림의 질서를 어지럽히면 청운검문도 무사하지 못할 거요."
주지객은 뒤로 물러나며 주변의 호위 무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십여 명의 고수들이 각자의 병기를 뽑아 들며 설무한을 포위했다.
그들의 눈에는 탐욕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정무맹의 금패를 보유한 자를 잡으면 막대한 보상금이 약속되어 있었다.
설무한은 차가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돈이 흐르지 않으면 낙양의 심장도 멈출 것이다. 선택해라."
그의 발끝에서 시작된 냉기가 전장의 기둥을 타고 천장으로 뻗어 올라갔다.
화려하게 빛나던 금등의 불빛이 얼어붙어 꺼졌다.
천장에서 얼음 송곳들이 맺히더니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기는 숨을 쉴 때마다 폐부를 찌를 듯이 차가워졌다.
호위 무사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둘렀다.
설무한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손을 뻗어 검신을 잡았을 뿐이다.
치익.
달궈진 쇠가 물에 닿는 소리가 났다.
무사의 검은 손잡이부터 끝까지 순식간에 하얗게 변하더니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무사는 자신의 손이 얼어붙는 것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다음은 누구냐."
설무한의 목소리는 감정이 배제되어 더욱 서늘했다.
주지객은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의 가랑이 사이로 노란 액체가 흘러나왔으나 그조차 바닥에 닿기도 전에 얼어붙었다.
"여, 열어주겠소! 금고를 열 테니 제발 살려만 주시오."
주지객이 기어가는 자세로 안쪽 복도를 향해 손짓했다.
설무한은 그를 따라 전장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구두 굽 소리가 얼음 위에서 딱딱하게 울려 퍼졌다.
도착한 곳은 만년한철로 제작된 거대한 비밀 금고 앞이었다.
세 겹의 자물쇠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풀렸다.
치이익, 육중한 문이 열리며 내부의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설무한은 금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당연히 있어야 할 금괴의 광채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앞에 펼쳐진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 뭉치였다.
"이게 다 뭐지?"
설무한이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낙양의 빈민들이 정무맹의 횡포를 고발하며 올린 진정서였다.
수천, 수만 장에 달하는 종이들이 금고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위에는 붉은 낙인이 찍힌 정무맹의 압류 명령서가 덮여 있었다.
재물은 이미 정무맹의 창고로 옮겨진 뒤였다.
설무한의 손가락이 종이 더미를 헤치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낡은 가죽 주머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주머니 겉면에는 십 년 전 멸문당한 자신의 가문, 설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가슴팍이 조여오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는 빛바랜 서신 한 통과 설가 가주만이 가질 수 있는 흑요석 인장이 들어 있었다.
서신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설무한의 숨이 멎었다.
그것은 부친이 죽기 직전 전장에 맡긴 비밀 유언이었다.
'우리 가문이 정무맹의 금고 역할을 했던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설무한의 눈동자가 경련하듯 흔들렸다.
자신의 가문을 몰락시킨 배후가 정무맹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배후의 배후에 자신의 사부가 있었다는 기록이 서신 뒷면에 적혀 있었다.
사부는 가문의 재산을 노리고 자신을 제자로 거둔 것이었다.
제물이 되기 위해 길러진 세월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설무한은 서신을 꽉 쥐었다.
종이가 얼어붙어 바스라질 듯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등 위로 굵은 핏줄이 솟아올랐다.
평생을 바쳐 지켰던 문파가 사실은 가문의 원수였다는 진실이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주지객이 구석에서 숨을 죽인 채 설무한의 눈치를 보았다.
설무한은 천천히 인장을 품에 넣고 주지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서신을 누가 또 보았지?"
"그, 그것은…… 저도 잘 모르는 일입니다. 관리 번호만 붙어 있었을 뿐……."
"거짓말을 하면 혀부터 얼어붙을 것이다."
주지객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청운검문의 위진악 대협이 며칠 전 다녀갔습니다. 그가 금고를 점검하겠다며……."
"진악이가?"
설무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장 아끼던 제자였다.
자신의 모든 검법을 전수해주었던 아이였다.
그가 이미 이 진실을 알고 있었다면, 지난 세월의 배신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철저히 계획된 유린이었다.
설무한은 실소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웃음소리가 얼어붙은 공기 속에 날카롭게 박혔다.
그때, 금고 입구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차박, 차박.
규칙적이고 여유로운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안개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단정한 청색 도포에 허리에는 옥패를 찬 청년이었다.
"결국 찾아냈군, 스승님."
어둠 속에서 위진악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설무한의 것과 똑같은 흑요석 인장이 들려 있었다.
위진악은 인장을 공중에 던졌다 받으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 낡은 종이 한 장에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어차피 죽은 자들의 기록일 뿐입니다."
"네가…… 다 알고 있었느냐."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스승님의 발치에서 배운 게 무엇인지 벌써 잊으셨군요."
위진악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평소 수련장에서 짓던 인자한 미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설무한의 손에 든 서신이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조각나 흩어졌다.
"너를…… 내 손으로 죽여야겠구나."
"죽이다니요. 이제야 진짜 가족이 된 기분인데."
위진악이 인장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흑요석 인장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설무한의 냉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가르쳐준 검식으로, 스승님의 심장을 뚫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