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의 가장 깊고 어두운 지하 수로는 오물과 악취로 가득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차가운 물방울이 설무한의 뺨을 타고 흘렀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검게 변한 핏방울이 바닥의 고인 물 위로 파문을 그렸다.
설무한은 떨리는 손을 단전에 가져다 댔다.
내공을 끌어올리자 단전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한빙주가 반응했다.
푸르스름한 냉기가 손끝에서 피어올랐다.
그는 냉기를 상처 부위로 밀어 넣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이 얼어붙으며 지혈되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극심한 통증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턱 끝까지 차오른 신음을 삼키며 그는 다시 걸음을 뗐다.
어둠 속에서 질척이는 발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수로의 끝, 막다른 길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미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설무한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빈 칼집에 손을 올렸다.
그곳에는 죽은 줄 알았던 여인이 서 있었다.
“살아…… 계셨군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수로의 벽을 타고 흘러왔다.
소여진이었다.
그녀의 옷은 갈갈이 찢겨 있었고 얼굴에는 지워지지 않는 멍 자국이 선명했다.
설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금만상단의 창고에서 자신을 배신하고 칼을 겨눴던 그 눈동자였다.
소여진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설무한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진흙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지하 수로에 퍼졌다.
“죽여주십시오. 사부님.”
사부님.
그 호칭이 설무한의 가슴을 서늘하게 긁고 지나갔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손끝에 맺힌 한빙주의 냉기가 금방이라도 그녀의 목을 꿰뚫을 듯 요동쳤다.
소여진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대장로가…… 제 동생과 노부모를 인질로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이 오물 섞인 물과 섞였다.
설무한은 감정을 지운 채 물었다.
“그래서, 나를 판 대가로 가족은 구했나?”
소여진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녀는 대답 대신 소매 안에서 낡은 책자 하나를 꺼냈다.
기름종이에 싸여 습기를 막은, 두툼한 장부였다.
설무한은 그것을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이 까칠했다.
소여진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꺽꺽거리는 울음을 토해냈다.
“가족들은…… 이미 십 년 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대장로가 저를 부리기 위해 살아있다고 속인 것이었습니다.”
설무한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냉혹하게 굳어있던 심장 한구석이 기묘한 박동을 내뱉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배신은 한 번으로 족했다.
이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흑암절벽 아래로 던져졌던 기억이 생생했다.
하지만 눈앞의 여인이 내뿜는 절망은 연기로 흉내 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설무한은 차갑게 얼어붙은 손을 그녀의 머리 위에 올렸다.
살기가 서린 냉기가 그녀의 머리칼을 하얗게 얼렸다.
“눈물은 보이지 마라. 그것조차 얼려버리기 전에.”
소여진은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아냈다.
설무한은 그녀를 지나쳐 수로 안쪽의 마른 땅으로 향했다.
그녀를 살려두는 것은 독사를 품에 안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장부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지식이 필요했다.
그는 벽면에 박힌 낡은 촛대에 불을 붙였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장부의 첫 장을 넘겼다.
정무맹의 직인이 찍힌 서류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설무한의 눈이 빠르게 글자들을 훑어 내려갔다.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었다.
장부에는 지난 십 년간 정무맹이 자행한 학살의 기록이 적혀 있었다.
그 대상은 모두 특정 가문이나 소문파들이었다.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그들이 과거 '한빙주'의 행방을 알고 있었거나, 그 조각을 소유했던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설무한의 가문이 멸문당했던 그날 밤의 기록도 그곳에 있었다.
“이게…… 사실이냐?”
설무한의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긁혀 나왔다.
소여진은 고개를 숙인 채 간신히 답했다.
“정무맹은 단순한 영물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들은 고대 빙마의 심장을 원했습니다.”
빙마의 심장.
설무한은 자신의 단전을 더듬었다.
그 안에서 박동하는 한빙주의 기운이 평소보다 거칠게 날뛰었다.
그것은 단순한 영약이 아니었다.
수천 명의 피를 마시고 정제된, 저주받은 마물의 정수였다.
장부의 뒷장에는 더욱 충격적인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청운검문의 전대 장문인, 그리고 설무한의 사부.
그들의 이름 옆에는 '기증'이라는 기괴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설무한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자신이 평생 지켜온 문파가, 믿어왔던 사부가 이 학살의 공범이었다는 뜻인가.
그는 장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빠드득, 소리를 내며 종이가 구겨졌다.
“위진악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소여진이 고개를 들어 설무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가 이 장부를 직접 정리했습니다.”
설무한의 입술이 비틀렸다.
웃음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표정이 얼굴에 스쳤다.
자신이 애지중지 가르쳤던 제자가, 가문의 원수들과 손을 잡고 스승을 조롱해온 셈이었다.
그는 장부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아직 실행되지 않은 마지막 계획이 적혀 있었다.
'낙양 지하 수로의 원혼을 제물로 빙마의 심장을 완전하게 각성시킨다.'
그 제물 리스트의 맨 윗줄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설무한은 장부를 덮고 소여진을 보았다.
“너는 왜 이것을 나에게 가져왔지?”
“사부님만이…… 이 미친 짓을 멈출 수 있으니까요. 저들은 이미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소여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수로 위쪽에서 수천 마리의 쥐가 한꺼번에 이동하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벽면을 타고 흐르던 물줄기가 거꾸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설무한은 본능적으로 소여진의 뒷덜미를 잡아채 뒤로 던졌다.
콰앙!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철퇴가 박혔다.
바닥의 석판이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둠 속에서 황금색 사자 문양의 갑옷을 입은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무맹의 최정예 집행단, 황금사자대였다.
그들의 중심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위진악이 아니었다.
설무한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러나 기운만으로 숨을 멎게 만드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설무한의 단전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그릇이 완성되었구나.”
설무한은 자신의 심장이 기괴한 박동을 치는 것을 느꼈다.
한빙주가 내뿜는 냉기가 혈맥을 타고 뇌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그는 검 대신 냉기로 벼려진 얼음 칼날을 손에 쥐었다.
노인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정파의 것이 아니었다.
장부에 기록된 빙마의 살기가 수로 전체를 뒤덮었다.
설무한은 소여진이 건넨 장부를 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는 노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얼어붙은 바닥이 그의 발걸음에 맞춰 갈라졌다.
노인이 손을 휘두르자 수로의 물이 거대한 용의 형상이 되어 설무한을 덮쳤다.
설무한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단전을 향해 스스로의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한빙주의 핵을 강제로 일깨우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푸른 안개가 폭발하듯 수로를 가득 채웠다.
사방이 얼어붙는 소리 너머로 노인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더 타올라라! 그 피가 차갑게 식을수록 심장은 더욱 뜨거워질 테니!”
설무한은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인간으로서의 감각이 사라지고, 오직 살육만을 원하는 빙마의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흐릿한 정신 속에서 소여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비명이었을까, 아니면 사죄였을까.
설무한은 마지막 남은 이성을 쥐어짜며 얼음 칼날을 노인의 심장을 향해 던졌다.
동시에 수로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노인은 무너지는 돌무더기 사이로 사라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네 사부가 왜 너를 제자로 삼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설무한의 몸이 차가운 물살에 휩쓸렸다.
정신을 잃기 직전, 그는 장부의 겉장에 적힌 작은 글귀를 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필체가 아니었다.
죽었다고 믿었던 사부의 친필이었다.
장부의 가장 깊숙한 곳, 숨겨진 페이지가 물에 젖으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설무한이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상이 정무맹의 관찰 일지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제자가 아니라, 정성스럽게 길러진 제물에 불과했다.
설무한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다 얼음 결정이 되어 부서졌다.
그는 쏟아지는 물살 속에서 장부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냈다.
'실패할 경우, 위진악을 새로운 그릇으로 대체한다.'
설무한은 끓어오르는 냉기를 억누르며 손을 뻗어 무너지는 벽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돌벽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