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엘의 목등성이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피부가 터져 나갔다. 선혈이 낭자한 틈새로 푸른 비늘이 돋았다. 그것은 인간의 살점이 아니라 단단한 경갑에 가까웠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고요한 탑 상층부를 메웠다. 카엘의 눈동자가 좌우로 찢어지며 황금빛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더 이상 대재상의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짐승의 갈라진 호흡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아델가드가 끝장나는구나.
카엘이 손을 뻗자 시간의 탑 중심부가 진동했다.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비명을 지르며 역회전했다. 탑의 외벽을 타고 흐르던 마나가 붉은색으로 변질되었다. 그것은 도시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아가리였다. 에테르 폭풍이 하늘을 찢으며 소용돌이쳤다. 대기를 가득 채운 마나 입자가 살을 에는 칼날처럼 변했다. 성벽 너머에서 시민들의 비명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레온하르트의 오른팔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소매 안쪽에서 각인된 룬 문자가 요동쳤다. 살을 태우는 고통이 어깨를 타고 뇌수까지 뻗쳤다. 그는 이를 악물며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빛나는 문자들이 피부 위에서 재구성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마법 공식이 아니었다. 500년 전 아버지가 조약문에 숨겨둔 이면의 열쇠였다. 아스텔 가문의 혈통만이 만질 수 있는 제어 장치였다.
관리자 권한을 승인한다.
머릿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버지가 남긴 사념인지 아니면 조약 자체의 의지인지 알 수 없었다. 레온하르트는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법전의 조항을 읊조렸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복부에 힘을 주었다. 관리자 권한은 곧 시스템의 파괴를 의미했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언령을 가두는 그릇이 되는 일이었다.
에라스무스가 그의 소매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콧수염을 바르르 떨며 노법사가 절규했다. 이대로 개방하면 자네의 회로가 견디지 못하네. 이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 에라스무스의 손가락 끝이 레온하르트의 옷자락을 적셨다. 공포가 가득한 노인의 눈동자에 붉은 탑의 잔상이 맺혔다.
레온하르트는 조용히 에라스무스의 손을 떼어냈다. 차가운 금속 질감의 아티팩트가 가슴 안쪽에서 공명했다. 그는 카엘의 뒤틀린 육체를 똑바로 응시했다. 용의 비늘로 뒤덮인 괴물은 이제 인간의 언어를 잃었다. 오직 파괴만을 갈구하는 원초적인 마나의 덩어리였다. 탑의 폭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법의 수호자는 법전 뒤에 숨지 않는다.
레온하르트가 한 걸음 내디디며 낮게 읊조렸다. 발밑의 석재가 마나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가루가 되었다. 그는 품 안에서 낡은 법전을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종이들이 낱낱이 흩어지며 황금빛 사슬로 변했다. 그것은 500년 동안 인간을 옥죄던 구속구이자 최후의 방패였다.
법전 그 자체가 되어야지.
그의 목소리가 탑 전체에 공명하며 카엘의 포효를 눌렀다. 레온하르트의 전신에서 푸른 불꽃이 치솟았다. 마나 회로가 강제로 확장되며 혈관이 터져 나갔다. 피부 위로 검은 룬 문자들이 문신처럼 번져 갔다. 고통은 이미 감각의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그는 자신이 세계의 일부가 되는 기이한 해방감을 느꼈다.
카엘이 바닥을 박차며 레온하르트에게 쇄도했다. 용의 발톱이 공기를 찢으며 그의 가슴을 겨냥했다.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충돌하며 탑의 상층부가 증발했다. 먼지 구름 속에서 두 존재의 실루엣이 엉켰다. 인간의 논리와 용의 폭력이 맞부딪치는 현장이었다. 아델가드의 하늘은 이제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공간이 왜곡되며 중력이 제멋대로 뒤틀렸다. 레온하르트의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단층 촬영처럼 조각났다. 그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점점 거대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인간의 박동이 아니라 고대 기계의 구동음이었다. 가슴 중앙에 박힌 아티팩트가 갈비뼈를 밀어내며 자리를 잡았다.
부친의 얼굴이 환영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조약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자결했던 그 뒷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법이 인간을 지키는 유일한 울타리라 믿었다. 이제 그 울타리를 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했다.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생명력을 연료 삼아 룬을 완성했다. 손끝에서 뻗어 나간 사슬이 카엘의 목을 감아쥐었다.
카엘의 비명이 짐승의 울음소리와 섞여 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몸에 돋아난 비늘을 뜯어내며 몸부림쳤다. 마나의 역류가 키메라의 육체를 안쪽에서부터 파괴했다. 탑의 진동이 멈추고 거대한 마나 정수가 레온하르트에게 집중되었다. 도시를 가득 채웠던 붉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레온하르트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깨진 안경 조각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안경알 위로 그의 얼굴이 비쳤다. 왼쪽 눈동자가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지며 황금색으로 빛났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증오하던 포식자의 눈과 닮아 있었다.
아티팩트가 심장 근육을 파고들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금속의 촉감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법의 논리가 감정의 자리를 대신 채우기 시작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아이린이 검을 쥔 채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동료가 아니었다. 낯선 존재를 마주한 경계심과 공포가 서려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멀찍이 서서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탑의 꼭대기에는 오직 거친 바람 소리만이 맴돌았다. 레온하르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이린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레온, 너 눈이 왜 그래.
아이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정적을 깼다. 레온하르트는 대답 대신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 속에서 맥동하는 아티팩트가 그의 존재를 재정의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인간도, 용도 아닌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이자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괴한 공명음이 흘러나왔다.
레온하르트는 바닥에 떨어진 법전 조각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 끝이 닿자 종이가 검게 타올랐다. 금지된 지식이 뇌세포 하나하나에 강제로 새겨졌다. 그것은 500년 전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저주였다. 아스테리아 대륙의 지도가 머릿속에서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심장부 산맥 너머에서 잠자던 고룡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들의 비늘이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게 찔렀다.
입안에서 비릿한 금속 맛이 났다. 레온하르트는 폐부 깊숙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공기 중에 떠다니던 마나 입자들이 그의 지배하에 놓였다. 더 이상 서클을 연마할 필요가 없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세상의 법칙을 수정할 수 있었다. 이것이 드래곤들이 누려왔던 언령의 정체였다.
카엘의 시신은 이미 잿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대재상의 화려했던 관복만이 바닥에 덩그러니 남았다. 권력의 허망함이 천공의 바람에 씻겨 내려갔다. 하지만 레온하르트의 가슴에는 그보다 무거운 돌덩이가 얹혔다. 아버지가 숨기려 했던 마지막 조항이 보였다. 조약의 파기는 곧 관리자의 소멸을 전제로 했다.
에라스무스가 비틀거리며 다가와 바닥을 짚었다. 노법사의 눈가에 맺힌 이슬이 마나의 열기에 증발했다. 자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는가. 에라스무스의 목소리는 쉰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는 레온하르트의 변해버린 눈을 차마 보지 못했다. 발끝만 내려다보며 콧수염을 거칠게 쥐어뜯을 뿐이었다.
법은 공평해야 합니다.
레온하르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티팩트가 내뱉는 기계적인 선언이었다.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고 감정의 흔적도 지워졌다. 그는 자신의 손등을 뒤덮은 검은 문양을 내려다보았다. 문양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아이린이 검 끝을 낮게 겨누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레온, 제발 정신 좀 차려봐. 아이린의 외침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손은 검자루를 놓지 않았다. 전사의 본능이 그녀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레온하르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벽 아래를 보았다. 아델가드의 시민들이 불타는 도시를 보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켜주던 결계가 왜 깨졌는지 알지 못했다. 용의 혈세를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들에게 레온하르트는 구원자가 아니라 재앙의 시작이었다.
대기가 다시 한번 뒤틀리며 공간이 찢어졌다. 은색 빛을 내뿜는 차원문이 탑의 중앙에 나타났다. 드라코니아 고원에서 파견된 중재자의 기운이었다. 카엘의 죽음과 조약의 균열을 감지한 고룡들이 움직였다. 차원문 너머로 거대한 황금빛 눈동자가 레온하르트를 응시했다.
미천한 생명이 조약에 손을 댔구나.
뇌를 직접 타격하는 거대한 의지가 탑을 압박했다. 용의 언령이 실체화되어 레온하르트의 사지를 억눌렀다. 바닥의 석재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한번 가루가 되었다. 아이린과 에라스무스는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오직 레온하르트만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서 있었다.
그의 가슴 속 아티팩트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푸른 빛이 황금빛 언령과 충돌하며 불꽃을 튀겼다. 레온하르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안경테를 밀어 올렸다. 안경알은 이미 사라졌지만 습관은 육체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는 품 안에서 조약문의 원본을 꺼내 들었다.
제9조 4항을 상기시키지.
레온하르트의 목소리가 용의 언령을 뚫고 울려 퍼졌다. 조약문의 글자들이 공중에 떠오르며 거대한 원을 형성했다. 관리자는 부당한 간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원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황금빛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서렸다.
인간이 어찌 고대어를 구사하는가.
질문은 필요 없다. 레온하르트가 손을 뻗어 조약문의 원본을 찢어버렸다. 500년의 평화라는 이름의 노예 문서가 가루가 되었다. 대륙 전역을 덮고 있던 보이지 않는 사슬이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레온하르트의 심장이 멎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는 피를 한 움큼 토해내며 바닥을 짚었다.
피는 붉은색이 아니라 진한 보랏빛이었다. 용의 마력과 인간의 생명력이 섞여 만들어낸 기괴한 색이었다.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손가락이 조금씩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피부 위로 투명한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 죽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에라스무스가 기어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자네, 몸이 변하고 있어. 노법사의 손길이 닿은 곳이 뜨겁게 타올랐다. 레온하르트는 거칠게 에라스무스를 밀쳐냈다. 지금의 자신에게 인간의 온기는 독약과 같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탑의 난간 끝으로 향했다.
아이린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검이 레온하르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비켜, 아이린. 레온하르트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짐승의 그것이었다. 아이린은 대답 대신 검을 더 굳게 쥐었다. 너를 이대로 보낼 순 없어. 그녀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칼날을 타고 흘렀다.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왼쪽 눈을 가렸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손바닥 너머로 열기를 뿜었다. 그는 이제 인간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직 차가운 법과 질서의 논리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이린의 희생도, 동료애도 계산기 위의 수치로 보일 뿐이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아델가드를 덮었다. 천공의 둥지에서 내려온 고룡들이 날개를 펼쳤다. 그들의 포효 한 번에 성벽의 방어 진지가 무너져 내렸다. 인간들은 절망하며 신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것은 신이 아니라 포식자들이었다.
레온하르트는 난간 너머로 몸을 던졌다. 추락하는 도중 그의 등에서 거대한 날개가 돋아났다. 살점이 찢어지고 뼈가 돋아나는 고통이 전신을 훑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인간의 법전은 끝났지만, 용의 법전은 이제부터 자신이 써 내려갈 것이다.
지상에서 아이린의 절규가 들려왔다. 레온하르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날갯짓으로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고룡들을 향해 입을 벌렸다. 목구멍 안쪽에서 푸른 마나의 정수가 응축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마법도, 용의 언령도 아닌 새로운 힘이었다.
가장 먼저 다가온 적색 용의 목을 낚아챘다. 레온하르트의 발톱이 용의 단단한 비늘을 종잇장처럼 찢었다. 뜨거운 용혈이 그의 전신을 적셨다. 그는 그 피를 마시며 자신의 존재가 완성되는 것을 느꼈다. 이제 아스테리아의 주인은 바뀌어야 했다.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불꽃이 비처럼 쏟아졌다. 레온하르트는 불길 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오직 투쟁과 지배의 영역이었다. 인간의 마음은 타버린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다. 그는 더 이상 안경을 고쳐 쓰지 않았다.
성벽 위에서 아이린이 무릎을 꿇은 채 하늘을 보았다. 그녀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에라스무스는 찢어진 조약문 조각을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푸른 그림자가 다시 한번 지나갔다. 그것은 그들이 알던 법무관의 모습이 아니었다.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돌려 멀리 보이는 천공의 둥지를 응시했다. 그곳에 있는 고룡 의회의 수장들을 떠올렸다. 법의 집행은 이제 장소를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허공을 향해 길게 포효하며 자신의 도래를 알렸다. 대륙의 모든 생명체가 그 소리에 숨을 죽였다.
날개 끝에서 푸른 불꽃이 튀며 자취를 남겼다. 레온하르트는 구름 사이로 사라지며 마지막 인간의 언어를 내뱉었다.
심판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