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가드 중앙 광장의 돌바닥은 정오의 햇살을 받아 하얗게 질려 있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의 숨소리가 지열과 섞여 눅눅한 공기를 형성했다. 원형으로 늘어선 왕립 법무관들이 일제히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오리하르콘이 섞인 칼날이 매끄러운 금속음을 내며 햇빛을 튕겨냈다. 그들의 중심에 선 나는 낡은 법전의 모서리를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튕겼다. 종이의 거친 질감이 지문에 닿았다. 맞은편 높은 상석에 앉은 카엘이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그의 입술이 비틀리며 기괴한 곡선을 그렸다.
나는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법전 제42조 3항을 나직하게 읊조렸다. 목소리가 건조한 공기를 가르고 카엘의 귀에 닿았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것은 사형 집행이나 다름없는 신호였다. 법무관들의 발동 기동이 시작되자 광장의 마나 농도가 급격히 치솟았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바늘로 찌르는 듯 따가웠다. 나는 소매 안쪽의 은색 원통을 움켜쥐었다. 에라스무스가 밤새 조율하며 콧수염을 꼬던 모습이 스쳤다.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법무관 하나가 대지를 박차고 튀어 올랐다. 검 끝이 내 목줄기를 향해 최단 거리로 쇄도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원통의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장치 내부의 마나석이 으깨지며 순수 정수가 흘러나왔다. 웅성거리는 기계음이 내 발밑으로 퍼져 나갔다. 검날이 허공에서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미끄러졌다. 내 몸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유체의 막이 형성된 듯했다. 법무관의 검은 주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옆으로 비껴 나갔다.
당혹감에 젖은 법무관의 눈동자가 좌우로 거칠게 흔들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법전의 무거운 귀퉁이로 상대의 손목을 내리쳤다. 뼈가 어긋나는 둔탁한 파열음이 들렸다. 비명이 터지기도 전에 두 번째 법무관이 가세했다. 연속적인 검격이 내 외투 깃을 스쳤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장치의 출력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원통에서 뿜어져 나온 은색 빛줄기가 내 팔을 감싸 안았다. 빛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변하며 허공에 고정되었다.
그것은 6서클 마법인 마나 역전의 진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진의 중심부에서 파동치는 마력의 주파수가 기묘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고대 룬어 분석법을 적용한 변이 마법이었다. 카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읊조리던 축문이 뚝 끊겼다. 내 주변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그것은 드래곤들이 언령을 내뱉을 때 발생하는 공간 왜곡과 닮아 있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는 낮았지만 광장 구석구석까지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보아라. 너희가 숭상하는 언령은 그저 정교하게 조율된 마력의 파동일 뿐이다.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공중에 떠 있던 마법진이 유리 파편처럼 흩어졌다. 흩어진 마력 입자들이 법무관들의 오리하르콘 검에 들러붙었다. 푸른 안개가 걷히고 대신 투명한 진동이 검신을 장악했다. 법무관들은 자신의 검을 제어하지 못하고 손을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검들이 스스로 진동하며 불꽃을 튀겼다. 나는 다시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카엘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상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정적만 남은 광장에 규칙적으로 울렸다. 무장을 해제당한 법무관들은 뒤로 주춤거리며 길을 내주었다. 계단을 오르는 내 구두 끝에 먼지가 묻었다. 나는 카엘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법전을 치켜들었다. 무거운 가죽 표지가 카엘의 턱 끝을 겨누었다. 카엘의 관자놀이를 타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의 입술이 경련하며 무언가 말을 내뱉으려 했다.
내 눈빛에 담긴 서늘한 논리가 그의 혀를 굳게 만들었다. 나는 법전의 첫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종이가 마찰하는 소리가 비명보다 날카롭게 들렸다. 카엘의 손등에 돋은 핏줄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 손가락이 특정 조항 위에 멈춰 섰다. 평화 조약 부칙 제12조. 드래곤의 대리인은 결투 재판의 결과에 불복할 수 없다.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논리는 완벽했고 증거는 충분했다.
하늘의 색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고막을 찢는 듯한 금속성 굉음이 아델가드 전체를 뒤덮었다. 광장을 에워싼 성벽의 돌들이 비명을 지르며 금을 내뿜었다. 내 코끝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고개를 들어 올린 내 눈에 거대한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운석이 아니었다. 거대한 날개를 접은 채 추락하는 포식자였다.
쾅 하는 충격음과 함께 광장 중앙이 폭삭 내려앉았다. 자욱한 먼지 구름 사이로 거대한 발톱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름이 수 미터에 달하는 발톱이 결투 재판장의 대리석 바닥을 진흙처럼 짓이겼다. 충격파에 밀려난 군중들이 바닥을 굴렀다. 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발락의 형체가 드러났다. 평소의 은빛이 아니었다. 용의 비늘은 금방이라도 피가 배어 나올 듯 불길한 붉은빛을 내뿜고 있었다.
발락이 고개를 쳐들고 포효했다. 언령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리적 음파만으로 주변 건물의 유리창이 일제히 깨져 나갔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법전 선반에 의지해 버텼다. 발락의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 속에 광기가 가득 차 있었다. 용은 거친 숨을 내뱉을 때마다 뜨거운 증기를 뿜어냈다. 증기가 닿은 바닥의 돌들이 검게 타들어 갔다.
카엘은 바닥에 엎드린 채 용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발락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용의 시선은 오직 내 팔에 새겨진 룬 문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발락이 한 걸음 내디뎠다. 광장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용의 비늘 사이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평소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파괴 본능만이 남은 짐승의 기운이었다. 나는 팔의 통증을 느끼며 아티팩트를 다시 움켜쥐었다.
룬 문자가 피부 위에서 박동하며 붉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용의 거대한 발톱이 내 머리 위로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림자가 광장의 절반을 삼켰다. 나는 도망치는 대신 법전을 가슴팍에 바짝 붙였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눈가를 가렸다. 발락의 목울대가 크게 꿈틀거리며 뜨거운 열기를 머금었다. 브레스의 전조였다. 입술 사이로 푸른 불꽃이 새어 나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법전의 마지막 장을 찢어냈다. 종이 조각이 내 손안에서 룬 문자와 반응하며 황금색으로 타올랐다. 용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드는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500년 전의 계약서 원본이었다. 조약의 허점이 내 손등 위에서 문자로 구체화되었다. 발락의 거대한 입이 열리며 화염이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타오르는 종이를 용의 발치로 던졌다.
공간이 비틀리며 투명한 사슬이 허공에서 솟구쳤다. 사슬은 용의 목과 날개를 사정없이 휘감았다. 발락의 포효가 고통 섞인 비명으로 바뀌었다. 뿜어져 나오려던 불꽃이 입안에서 폭발하며 용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나는 그 틈을 타 카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비릿한 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것이 네가 믿던 신의 최후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장 지하에서 거대한 진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위가 아니라 아래였다. 대리석 바닥이 종이처럼 찢어지며 검은 액체가 솟구쳤다. 그것은 마나석이 녹아내린 순수 정수의 바다였다. 발락은 사슬에 묶인 채 그 심연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용의 비늘이 녹아내리며 발생하는 연기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나는 카엘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린이 검을 뽑아 든 채 군중을 헤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났다. 에라스무스는 멀리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무언가 소리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용의 비명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법전을 품에 안았다. 팔에 새겨진 룬 문자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발락의 꼬리가 지면을 강타하며 마지막 발악을 했다. 거대한 석재 기둥이 내 머리 위로 쓰러졌다. 나는 몸을 날려 잔해 사이로 굴렀다. 등 뒤에서 육중한 파쇄음이 들렸다. 먼지 너머로 보이는 발락의 눈동자는 더 이상 광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심연에서 건져 올린 듯한 명확한 증오였다. 용은 완전히 가라앉기 직전 내 귓가에 단 한 마디를 남겼다.
언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였다.
너도 결국 우리와 같은 괴물이 될 것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먼지가 걷힌 광장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카엘은 정신을 잃은 듯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군중들은 겁에 질려 숨을 죽인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천천히 광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발락이 사라진 자리에는 거대한 구멍만이 남았다. 구멍 안쪽에서는 알 수 없는 푸른 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구멍 가장자리에 서서 심연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용의 비늘도, 사슬도 없었다. 대신 고대어로 기록된 거대한 석판이 놓여 있었다. 500년 전 인간들이 숨겼던 진실의 파편이었다. 나는 안경을 벗어 옷깃으로 닦았다. 시야가 선명해지자 석판 위에 새겨진 이름들이 보였다. 그중 가장 윗부분에 새겨진 이름은 내 아버지의 것이었다.
손끝이 떨려왔다. 나는 석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 뒤에서 서늘한 금속의 감촉이 내 목줄기에 닿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오리하르콘으로 제련된 성검의 감촉이었다. 내 등 뒤에 선 아이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숨결이 떨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레온하르트. 너 지금 눈이 용이랑 똑같아.
나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구멍 안쪽의 푸른 빛이 내 눈동자에 반사되어 일렁였다. 내 팔의 룬 문자가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입가에 고인 피를 닦아내며 아이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검 끝이 내 목을 깊게 파고들었다. 핏방울이 칼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이린, 조약 제24조를 기억하나?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살해 의도가 분명한 기사에게는 즉결 처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