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가드 하층민 구역은 언제나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쇠락한 마나의 잔향이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조차 이곳의 비참함을 가리지 못했다.
레온하르트는 낡은 외투 깃을 세우며 주위를 살폈다.
그의 손에는 거칠게 짜인 삼베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주변의 그림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굶주린 늑대처럼 번들거리는 눈동자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나 회로가 망가져 버린 하급 마법사들이었다.
명예를 잃고 떠도는 부랑 기사들도 그 틈에 섞여 있었다.
레온하르트는 발걸음을 멈추고 보따리의 매듭을 천천히 풀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적막한 골목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보따리가 열리는 순간, 안에서 뿜어져 나온 순백의 광채가 사방을 집어삼켰다.
고순도 마나석들이 뿜어내는 마력의 파동이 공기를 진동시켰다.
몰려든 자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법적 허용치를 아득히 상회하는 정제된 마나의 농도였다.
그들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했다.
"이건 밀수품이다. 의회의 허가 따위는 받지 않았지."
레온하르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군중의 반응을 살폈다.
마나석의 빛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한 노마법사가 떨리는 손을 뻗으려다 레온하르트의 서늘한 시선에 멈칫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마력의 갈증으로 인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곳은 드래곤들의 축복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오직 수탈과 억압만이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땅이었다.
그는 마나석 하나를 집어 들어 허공에 가볍게 던졌다.
푸른 빛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 궤적을 쫓았다.
레온하르트는 발밑에 떨어진 마나석을 툭 차며 입을 열었다.
"누가 이런 위험한 물건을 아델가드 성벽 안으로 들여왔나."
거친 목소리와 함께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황금 독수리회의 상인들이 사병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화려한 비단 옷을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탐욕스러운 짐승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상인 조합의 부장인 한 남자가 앞장서서 걸어 나왔다.
그는 레온하르트가 들고 있는 보따리를 응시하며 입술을 핥았다.
사병들이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꽉 쥐며 군중을 밀어냈다.
철갑이 부딪히는 쇳소리가 골목의 습한 공기를 갈랐다.
"이 지역의 모든 마나석 유통은 우리 황금 독수리회의 독점 권한이다."
상인의 위협에도 레온하르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상인의 비단 옷자락을 훑었다.
"독점 무역권이라. 드래곤에게 아부하며 얻어낸 그 더러운 종이 쪼가리를 말하는 건가?"
상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손을 들어 사병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군중 속에서 기이한 살기가 느껴졌다.
카엘이 보낸 암살자들이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단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금속의 서늘한 마찰음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공기를 조였다.
아이린이 검 손잡이를 거칠게 두드리며 레온하르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에 날카로운 투기가 서렸다.
"레온하르트, 상황이 좋지 않아. 놈들이 포위망을 좁히고 있어."
"알고 있다. 하지만 법이라는 건 가끔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지."
레온하르트는 품 안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냈다.
그것은 마법 과세제의 세부 조항이 적힌 법전의 사본이었다.
그는 군중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목소리는 마력에 실려 골목 구석구석까지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여러분은 매달 마법 숙련도에 따라 터무니없는 세금을 내고 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억눌려 왔던 불만이 불씨가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 청년 기사가 주먹을 꽉 쥐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낡은 갑옷에는 고대의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전설 속 고대 기사단의 표식이었다.
레온하르트는 그 청년의 눈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보았다.
"세금은 가치를 창출할 때 내는 것이다. 너희는 공포를 팔 뿐이니, 낼 세금은 없다."
레온하르트의 일갈이 떨어지자마자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하층민들이 상인들의 사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암살자들이 단검을 휘두르며 레온하르트에게 쇄도했다.
아이린의 검이 그들보다 한발 빨랐다.
강철이 맞부딪히는 불꽃이 어둠을 갈랐다.
비명과 고함이 뒤섞이며 아델가드 하층민 구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미친 짓이야! 감히 드래곤의 법에 대항하겠다고?"
상인이 뒤로 물러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분노한 민중의 물결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마나석 보따리를 향해 손을 뻗는 대신, 자신들을 억압하던 자들을 향해 몽둥이를 들었다.
레온하르트는 그 광경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안경 너머로 비치는 세상은 오직 차가운 인과관계의 집합체였다.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하늘 위에서 거대한 압력이 쏟아져 내렸다.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름 끼치는 마력의 파동이었다.
폭동을 일으키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멈췄다.
무거운 침묵이 골목을 덮쳤다.
군중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열었다.
그 끝에는 화려한 법복을 입은 대재상 카엘이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중갑을 두른 왕립 법무관들이 서슬 퍼런 칼날을 세우고 있었다.
카엘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레온하르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며 입술을 뒤틀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까닥거렸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공간이 드래곤의 언령에 반응하듯 일렁였다.
그는 레온하르트의 발치에 흩어진 마나석들을 보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레온하르트 반 아스텔. 너를 마법 제한법 위반 및 내란 선동죄로 기소한다."
카엘은 품 안에서 국왕의 인장이 찍힌 양피지를 꺼내 높이 들었다.
그것은 재판 없이 즉결 처분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했다.
양피지 가장자리에 새겨진 금박 문양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왕의 이름으로 명한다. 저 자를 현장에서 즉결 처형하라."
법무관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레온하르트를 향해 돌진했다.
아이린이 앞을 막아서려 했지만, 레온하르트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멈춰 세웠다.
그는 오히려 카엘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레온하르트의 표정에는 공포도, 당혹감도 없었다.
그는 품 안에서 낡았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양식의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카엘 폰 아델가드. 당신의 처분권은 법적으로 무효다."
레온하르트의 목소리가 카엘의 고함을 뚫고 선명하게 울렸다.
그는 손에 든 종이를 카엘의 얼굴을 향해 거칠게 던졌다.
허공을 날아간 종이는 카엘의 발앞에 툭 떨어졌다.
카엘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붉은색 밀랍 인장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고대어로 쓰인 문구들이 종이 위에서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이것은 아스테리아 건국 조약 제3조 1항에 의거한 결투 재판 신청서다."
카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결투 재판.
그것은 어떠한 상급 법령보다 우선하는 인간의 고대 관습이었다.
드래곤조차 법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였다.
만약 거부한다면 카엘은 그 즉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레온하르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소매가 걷힌 팔에는 보랏빛 룬 문자가 기괴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드래곤의 비명 소리와 함께 각인되었던 금기였다.
"당신이 숭배하는 그 드래곤의 힘으로, 나를 직접 심판해 보시지."
카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이미 그를 향해 차가운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법무관들도 숨을 죽였다.
분노했던 하층민들도 이 믿기지 않는 광경 앞에 굳어버렸다.
레온하르트의 발밑에서부터 보랏빛 사슬이 뱀처럼 기어 나왔다.
사슬은 카엘의 그림자를 붙들기 위해 바닥을 긁으며 나아갔다.
"제안을 거절할 생각인가? 재상님."
레온하르트는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카엘의 손에 들려 있던 처분권 양피지가 검게 타들어 갔다.
재가 되어 흩어지는 종이 조각들이 바람에 날렸다.
그것은 법의 집행권이 카엘의 손을 떠났음을 의미했다.
결투의 장이 열린 것이었다.
카엘은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의 검을 쥐었다.
그 순간, 레온하르트의 눈이 서늘한 광채를 띠며 가늘어졌다.
"자, 이제 당신의 그 위대한 법을 증명해 봐."
카엘의 검 끝이 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렸다.
그는 침을 삼키며 주변의 법무관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조약의 마력에 묶여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결투 재판이 성립되는 순간, 개입하는 모든 자는 법의 저주를 받는다.
레온하르트의 발치에서 시작된 보랏빛 사슬이 카엘의 발목을 옥죄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카엘의 살을 파고들었다.
"이건 정당한 법 집행이 아니다! 암살이다!"
카엘의 비명이 골목 안에 메아리쳤다.
레온하르트는 대답 대신 품 안에서 작은 고대 룬 석판을 꺼냈다.
에라스무스가 건네주었던, 드래곤의 언령을 역행시키는 장치였다.
석판의 표면이 붉게 달아오르며 카엘의 주변 공기를 진공으로 만들었다.
카엘은 목을 부여잡으며 헉헉거렸다.
그의 눈에 서린 것은 이제 탐욕이 아닌 원초적인 공포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주문을 외우려 입을 벙긋거렸다.
하지만 언령은커녕 신음조차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법의 맹점은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을 먼저 삼키지."
레온하르트의 목소리가 카엘의 귓가에 차갑게 박혔다.
그는 천천히 카엘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카엘의 안경 너머로 비친 자신의 모습이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레온하르트는 손에 쥔 룬 석판을 카엘의 가슴팍에 갖다 대었다.
치익,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카엘의 옷자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카엘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보랏빛 사슬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다.
"살려... 살려줘... 레온하르트!"
카엘의 비굴한 요청에 레온하르트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카엘의 비참한 몰골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죽어갈 때, 카엘은 저런 얼굴로 법전을 읽어 내려갔었다.
공정함이라는 이름의 사형 선고였다.
레온하르트는 룬 석판에 마력을 주입했다.
석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카엘의 심장을 관통하려던 찰나였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일시에 흩어졌다.
거대한 그림자가 하층민 구역 전체를 뒤덮었다.
공기를 가르는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엎드렸다.
레온하르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황금빛 비늘을 번뜩이며 지상으로 강하하는 존재가 있었다.
카엘이 그토록 숭상하던, 그리고 레온하르트가 그토록 증오하던 드래곤이었다.
"누가 나의 중재자를 심판하려 드는가."
땅을 울리는 웅장한 목소리가 뇌리에 직접 박혔다.
드래곤 '발락'의 강림이었다.
그의 거대한 앞발이 성벽 위를 짓누르자 단단한 석재가 두부처럼 으깨졌다.
카엘은 구원자를 만난 듯 눈을 희번덕거리며 손을 뻗었다.
레온하르트는 룬 석판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마력이 피부를 태우는 듯 뜨거웠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치켜들며 거대한 용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조약 제5조. 결투 재판 중에는 그 어떤 고위 종족의 개입도 불허한다."
레온하르트의 외침에 발락의 황금빛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용은 코웃음을 치며 주둥이를 레온하르트의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뜨거운 숨결에서 유황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나왔다.
아이린이 비명을 지르며 검을 뽑아 들었지만, 용의 위엄 앞에 몸이 굳어버렸다.
발락의 거대한 앞발이 레온하르트의 머리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법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인간."
발락의 낮은 읊조림과 함께 레온하르트의 무릎이 꺾였다.
바닥의 돌판이 박살 나며 그의 다리가 땅속으로 파묻혔다.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부러진 뼈의 통증을 견디며 석판을 카엘의 목에 박아넣었다.
카엘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 순간, 발락의 포효가 도심 전체를 뒤흔들었다.
용의 거대한 발톱이 레온하르트의 어깨를 찢고 들어왔다.
붉은 피가 바닥의 결투 신청서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그 순간, 피에 젖은 신청서에서 눈부신 백색 광휘가 뿜어져 나왔다.
발락은 예상치 못한 반발력에 몸을 뒤로 젖히며 괴성을 질렀다.
"이 문양은... 에드윈의 것인가!"
발락의 외침과 동시에 레온하르트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피로 물든 조약문의 뒷면을 보았다.
거기에는 500년 동안 감춰져 있던 진실이 룬 문자로 빛나고 있었다.
레온하르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석판을 깨뜨렸다.
석판의 파편이 카엘의 시체와 함께 허공으로 비산했다.
"법은 너희가 만들었을지 몰라도, 함정은 우리가 팠다."
레온하르트의 말과 함께 아델가드의 대지가 거대하게 진동했다.
성벽 곳곳에 설치된 대공 방어진이 푸른색이 아닌 붉은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방어용이 아니었다.
아델가드 자체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드는 봉인 마법의 발동이었다.
발락은 황급히 날개를 펴고 하늘로 솟구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도시 전체를 휘감은 붉은 사슬이 용의 날개를 붙잡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레온하르트는 쏟아지는 잔해들 속에서 정신을 잃어갔다.
멀리서 아이린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카엘의 가슴에서 뜯어낸 드래곤의 비늘 한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법적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레온하르트는 비늘을 움켜쥐며 차가운 바닥 위로 쓰러졌다.
아델가드의 하늘은 이제 드래곤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 조약은 파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