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이마트배 2차전
목동 야구장. 이마트배 예선 2차전.
상대: 인천기계공고. 작년 이마트배 4강. 작년 청룡기 16강. 1차전 용산공고와는 수준이 달랐다. 타선의 스윙 스피드, 투수의 구속, 수비의 동선. 전부 한 단계 위.
스탠드가 1차전보다 많이 찼다. 입소문이었다. 고교 야구 커뮤니티에 '천량고 신입생 투수 3이닝 28구 무실점'. 댓글이 30개 넘게 달렸다. 대부분은 의심이었다. 하지만 의심도 시선이다.
스탠드 오른쪽 끝에 점퍼를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지난 경기와 같은 자리.
나는 불펜에 앉았다. 마운드 위에 차도윤이 올라갔다.
* * *
차도윤이 불안정했다.
1이닝. 첫 타자에게 볼넷. 공이 전체적으로 높았다. 3번 타자 적시타. 1실점. 투구수 22. 인천기계공고의 타선은 적극적이었다. 초구부터 스윙이 들어왔다. 기다리는 타선이 아니라 공격하는 타선.
2이닝. 삼진 하나를 잡았지만 공이 계속 높았다. 누적 38구.
3이닝. 안타. 볼넷. 안타. 연타석. 2실점. 누적 62구.
4이닝. 투구수 62구. 아직 80구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은 이미 1이닝과 달라져 있었다. 구속이 145에서 142로 내려왔다. 3km. 타자는 느낀다.
연타. 2실점 추가. 누적 78구.
5-0.
더그아웃이 무거웠다. 팀원들의 얼굴에 포기 비슷한 그림자가 스쳐 갔다. 5점 차이. 고교 야구에서 5점은 산이다.
감독이 타임을 걸었다. 마운드에 올라갔다. 차도윤이 고개를 숙였다.
감독이 불펜 쪽을 봤다.
"강시우. 올라가."
이미 워밍업을 마친 상태였다.
* * *
마운드로 걸어갔다.
차도윤이 내려오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면서 차도윤의 눈을 봤다. 시선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러버에 발을 올렸다. 흙을 고르고 로진백을 집었다.
5-0. 5점 뒤. 전생에서 이런 상황은 수없이 겪었다. 2군에서 패전 처리가 일이었다. 화려하지 않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철수가 마운드로 왔다.
"5점 차야. 일단 막아."
"막겠습니다. 데이터는 50% 정도입니다. 나머지 50%는 포수가 채워 주세요."
철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 * *
4이닝 1아웃. 첫 타자. 7번. 좌타. 데이터가 부족한 타자.
철수가 몸 쪽 높은 곳으로 미트를 냈다. 탐색구.
포심. 140. 타자가 참았다. 상체가 뒤로 약간 젖혔다. 몸 쪽 공에 대한 경계가 강한 타입.
철수가 바깥 높은 곳으로 미트를 바꿨다. 탐색 결과 반영. 몸 쪽에 경계가 강하면 바깥이 열린다.
2구째. 바깥 높은 곳. 스윙. 파울. 3구째. 낮은 곳으로 체인지업. 삼진.
포수가 읽은 데이터였다. 감독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데이터에 없는 타자가 나오면 어떻게 할 건데." 포수와 함께 잡는다.
이닝 종료.
* * *
5이닝. 상대 1번 타자.
바깥 높은 곳의 직구를 쳤다. 2루타. 1차전에서 바깥 낮은 곳에 약했던 타자가 적응한 것이다.
후속 타자. 3번. 우타. 체인지업 사인을 보냈다.
철수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이었다. 내 사인을 거부한 것이.
철수가 미트를 몸 쪽 높은 곳에 냈다. 직구 사인. 왜? 데이터에는 이 타자가 높은 공에 강하다고 적혀 있었다. 낮은 곳이 맞다.
하지만 철수가 거부했다. 포수의 눈을 믿는다고 정했다.
그립을 바꿨다. 포심. 몸 쪽 높은 곳. 던졌다.
타자가 뒤로 물러섰다. 스윙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철수가 공을 돌려보내면서 마스크를 살짝 올렸다.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읽을 수 있었다.
'눈이 낮은 쪽만 봤어.'
타자가 낮은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1차전 데이터를 연구한 것이다. 낮은 곳을 노리고 있는 타자에게 낮은 공을 던지면 맞는다. 철수는 타자의 눈동자를 읽었다. 데이터에 없는 정보. 포수의 시야에만 보이는 정보.
다음 공. 바깥 낮은 곳 슬라이더. 타자가 기다렸던 높이. 하지만 슬라이더다. 배트가 빗나갔다. 삼진.
더그아웃으로 내려오면서 철수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알았어요?"
"눈동자가 미트 아래만 따라가더라. 높은 공은 안 본다는 뜻이야."
데이터를 수집하는 쪽과 데이터를 실행하는 쪽. 이게 배터리다. 내가 놓친 걸 철수가 잡았다.
나머지를 잡았다. 병살. 1실점에서 막았다. 6-1.
6이닝. 무실점. 10구.
7이닝 초. 상대 4번 타자. 파워 히터. 카운트 1-1. 직구 몸 쪽. 타구가 유격수 방향으로 날아갔다. 강한 타구. 바운드가 높았다.
이민호가 움직였다.
왼쪽으로 2보. 타구가 오기 전에 포지션을 잡고 있었다. 3보. 직구 뒤 당겨치기 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리 왼쪽으로 체중을 옮겨놓은 것이다.
글러브를 뻗었다. 바운드가 불규칙했지만 글러브 안에서 잡혔다. 발을 딛고 1루로 송구. 정확. 아웃.
이민호가 유격수 포지션에서 나를 봤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네가 알려준 거 그대로 했더니 되더라." 그 말이 경기에서 증명된 순간이었다.
이닝 종료.
* * *
팀 타선이 반격을 시작했다.
5이닝 하 2점. 6이닝 하 1점. 7이닝 하 3점.
6-5. 역전.
더그아웃의 공기가 바뀌었다. 팀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건우도 벤치에서 소리를 질렀다. 예비였지만 팀원이었다. 모자를 벗어 흔들고 있었다.
8이닝. 3명. 10구. 무실점.
누적 72구.
더그아웃으로 내려왔다. 철수가 물을 건넸다.
"72구. 아직 여유 있어."
"33구 남았습니다."
"105까지 33구. 9이닝 하나."
"4번 타자부터입니다."
이민호가 지나가면서 물병을 하나 놓고 갔다. 말 없이. 눈이 한 번 마주쳤다.
"빨리 잡자."
* * *
9이닝. 마운드.
로진백을 집었다. 손바닥에 가루가 묻었다. 털었다. 다시 묻혔다.
상대 4번 타자가 타석에 섰다. 배트를 어깨에 올리고 발을 벌렸다. 스탠스가 넓었다. 파워 히터의 스탠스.
1차전에서 바깥 높은 곳 포심으로 잡았던 타자. 하지만 상대도 학습한다. 같은 공을 던지면 진다. 반복은 예측 가능성을 만들고, 예측 가능한 투수는 맞는다.
데이터의 진짜 가치는 반복이 아니라 변화다. 과거의 데이터로 현재를 예측하되, 현재의 판단으로 과거를 뒤집는 것.
철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첫 구. 체인지업.
직구와 같은 팔 스피드. 같은 릴리스 포인트. 같은 궤적으로 들어간다. 약 7미터 전방까지 직구와 동일한 경로. 하지만 그 지점을 지나면서 10km 느려지고, 마지막 순간에 떨어진다.
타자의 눈에는 직구처럼 보인다. 뇌가 직구라고 판단하고 배트를 시작한다. 공이 떨어질 때 배트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타자가 스윙했다. 배트가 공 위를 지나갔다. 헛스윙.
2구째. 포심. 같은 궤적. 같은 릴리스.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 공. 타자가 체인지업을 기다렸다. 배트를 참았다. 떨어지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3구째. 바깥 낮은 곳. 슬라이더. 가로로 미끄러지는 공. 배트가 공 아래를 지나갔다.
삼진.
5번 타자. 땅볼. 6번 타자. 플라이아웃.
경기 종료. 6-5. 승리.
투구수 84구. 4.1이닝 1실점. 구원승.
* * *
악수라인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감독이 다가왔다.
"수고했다."
두 글자.
전생에서 12년간 한 번도 듣지 못한 두 글자. "계속 가"와 "더 던져"만 듣던 사람에게서.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조여왔다. 반응할 회로가 없었다. 28살의 기억에 이 감정을 저장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고개만 숙였다.
감독이 돌아섰다. 걸어가는 등이 작아질 때까지 봤다. 전생에서도 이 등을 봤다. 하지만 그때 이 등은 "계속 가"라고 말하는 등이었다. 지금 이 등은 "수고했다"라고 말한 등이었다. 같은 등. 다른 말.
내가 달라졌으니 감독도 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벤치에 앉았다. 팔에 피로가 남아 있었다. 84구. 105구까지 21구를 남기고 끝냈다. 남긴 것이다. 쓸 수 있었지만 쓰지 않은 21구.
전생에서는 남기지 않았다. 전부 썼다. 그리고 전부 잃었다.
이번에는 남겼다.
그리고 이겼다.
코치가 다가왔다. 클립보드를 들고.
"강시우. 다음 경기, 감독님이 네 선발을 검토하고 계셔."
선발. 첫 이닝부터 마운드에 서는 것.
이번 생에서 두 번째 시작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