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온 라운지 1인 집중실의 조명은 꺼져 있었다.
강이준이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닿은 것은 빛이 아니라 냄새였다. 값비싼 가죽과 오래된 종이가 뒤섞인, 이사회 전용 회의실에서나 맡을 법한 향. 블라인드 틈으로 스며든 테헤란로의 야경이 좁은 공간을 희미하게 물들이고 있었고, 그 안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로열 보드 소속 이사, 한재윤.
권 회장 직계 라인의 세 번째 서열. 강이준은 그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단둘이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재윤은 의자를 돌리지도 않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 화면만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등을 보인 채 입을 열었다.
"문 닫고 앉아."
존칭이 생략된 말투였다. 강이준의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감각이 내려왔다. 문을 닫는 손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갔고, 그는 자신의 손등을 한 번 내려다본 뒤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집중실 내부는 2평 남짓. 가변형 벽체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좁은 벽이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졌다. 밀폐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골든 티켓 건으로 부르신 겁니까."
강이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한재윤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안경 너머의 눈이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웃지 않았다.
"그건 차 이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짧은 정지. 강이준은 숨을 고르지 않았다.
"내가 자네를 부른 건 다른 용건이니까."
태블릿을 밀어 강이준 앞으로 보냈다. 화면에는 엑셀 시트 형태의 장부가 떠 있었다. 날짜, 금액, 계좌 이동 내역. 강이준의 시선이 수신자 란에 멈췄다.
서도윤.
오르트 광고 기획 기획 2팀 팀장 서도윤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노바 일렉트로닉스의 광고 예산 일부가 외부 계좌를 경유해 서도윤 개인 명의로 입금된 것처럼 보이는 내역이 세 건. 날짜는 모두 프로젝트 제니스 착수 이전이었다.
'기밀 유출 의혹.'
6화에서 시작된 그 소문이 떠올랐다. 언더그라운드 탭이 퍼뜨린 정보의 출처를 끝내 확인하지 못했던 기억이 목 안쪽을 죄었다.
"이게 뭡니까."
"보이는 대로야." 한재윤이 의자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손끝이 규칙적인 박자를 새겼다. "서도윤 팀장이 노바 일렉트로닉스와 별도 거래를 진행한 내부 장부."
강이준은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사회 감사팀이 수집한 원본이지."
강이준은 화면을 스크롤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 멈춘 채였다. 엄지가 무의식적으로 손등의 흉터를 눌렀다. 옥상에서 서도윤이 그 흉터 위에 손가락을 얹었던 촉감이 아직 피부에 남아 있었다. 열흘 전의 체온이 지금 이 차가운 금속 테이블 위의 숫자들과 충돌했다.
"감사팀이 수집했다면 이사회에 직접 올리면 될 일 아닙니까."
"그러면 재미없잖아."
한재윤이 처음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빛이 그의 턱선을 반으로 갈랐다.
"강 팀장이 이걸 들고 이사회에 가면 서도윤은 산업 스파이로 끝이야." 한재윤의 목소리가 낮고 고른 온도를 유지했다. "공동 책임 연대제? 자네는 빠질 수 있어. 내가 로열 보드에서 보증하지."
강이준의 손가락 끝이 테이블 위에서 미세하게 움직였다.
"골든 티켓 건도 자연스럽게 묻히고."
목 뒤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이준은 시선을 화면에서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왜 저입니까."
"자네 아버님, 강민혁 선배가 이 회사를 세울 때 함께한 사람이니까." 한재윤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강 팀장, 아버님이 지키려던 이 회사를 무너뜨릴 셈인가?"
공기가 달라졌다.
집중실의 환기 시스템이 멈춘 것처럼 산소가 얇아지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이런 식으로 소환될 때마다 왼쪽 귀 아래의 흉터가 당기는 듯한 감각이 올라왔다. 피의 월요일. 아버지가 서도윤의 아버지를 잘라냈던 바로 그 역사.
'이 장부가 진짜라면.'
강이준은 그 문장을 머릿속에서 두 번 되뇌었다. 서도윤이 노바 일렉트로닉스와 별도 거래를 했을 가능성. 숫자의 나열은 정교했다. 계좌 이동 경로도 그럴듯했다. 하지만 강이준은 데이터 다이브에 들어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도윤이라면 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결벽증에 가까운 정리 정돈 습관을 가진 인간이 세 건이나 추적 가능한 입금 기록을 방치할 리 없었다.
'조작이다.'
확신은 있었다. 문제는 확신만으로 로열 보드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재윤이 태블릿 옆에 서류 봉투 하나를 더 꺼내 놓았다. 밀봉된 갈색 봉투. 안에는 프린트된 장부 사본이 들어 있을 터였다.
"내일 이사회 정기 보고 전까지 결정해." 한재윤이 손가락으로 봉투 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걸 들고 가면 자네는 기획 1팀 팀장 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프로젝트 제니스의 단독 크레딧도 가져갈 수 있어."
강이준의 시선이 서류 봉투 위에 머물렀다. 갈색 종이의 질감이 모르페우스 벙커에서 서도윤과 나란히 앉아 수정했던 기획안 표지의 색과 비슷했다. 새벽 네 시, 서도윤이 의자에 기대어 잠들었을 때 어깨 위로 걸쳐준 재킷의 무게가 손끝에 되살아났다.
"안 들고 가면요."
"그럼 내가 직접 올려." 한재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위협은 가볍지 않았다. "다만 그 경우엔 자네도 공범으로 묶여."
침묵.
"공동 책임 연대제, 기억하지? 서도윤이 스파이면 자네도 같이 나가는 거야."
환기구에서 미세한 바람이 새어 나왔다. 강이준의 앞머리가 흔들렸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감으면 서도윤의 얼굴이 보일 것 같아서.
한재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아, 한 가지 더." 문에 손을 올리며 한재윤이 덧붙였다. "이 장부를 만든 사람, 꽤 실력 있는 친구야. 감사팀에서도 원본과 구별 못할 정도라더군."
그 말은 고백이었다.
조작이라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는 뻔뻔함. 강이준의 손가락 끝이 차갑게 식었다. 한재윤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인자한 형태였지만 입꼬리의 각도가 차성민 이사가 회의 중 손톱을 만지작거릴 때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결정은 자네 몫이야, 강 팀장."
문이 닫혔다. 한재윤의 구두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강이준은 혼자 남은 집중실에서 서류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손등의 흉터 위로 엄지를 세게 눌렀다. 통증이 올라왔다. 아버지가 지키려던 회사. 아버지가 망가뜨린 사람의 아들. 그 사이에서 강이준은 열한 번째 밤을 지나고 있었다.
'내가 이걸 가져가면, 서도윤은 끝난다.'
태블릿 화면이 자동으로 꺼졌다. 어둠 속에서 테헤란로의 불빛만이 서류 봉투의 윤곽을 비추었다. 강이준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 무게는 거의 없었다. 종이 몇 장의 무게. 그런데 손목이 내려앉는 것처럼 무거웠다.
의자에서 일어섰다.
재킷 안주머니에 봉투를 밀어 넣었다. 심장 가까운 곳. 종이의 모서리가 셔츠 위로 미세하게 눌렸고, 그 압력이 갈비뼈 안쪽까지 닿는 것 같았다.
집중실 문 앞에 섰다.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한 번 돌리면 복도가 나오고, 복도를 지나면 엘리베이터가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15층 프라임 존이 나온다. 그 경로의 끝에 이사회가 있었다.
강이준은 숨을 내쉬었다. 길게, 천천히. 폐 안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갈 때까지.
문을 열었다.
복도의 형광등이 눈을 찔렀다. 한 발짝 내디뎠다. 자동문 센서가 반응하며 유니온 라운지 쪽 유리문이 스르륵 열렸고, 열린 문 너머로 복도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발이 멈추었다.
바닥 위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하나. 유리문 바로 옆,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사람의 윤곽이 형광등 아래 선명하게 잘려 있었다. 깔끔하게 접힌 셔츠 소매. 결벽에 가까울 만큼 주름 하나 없는 슬랙스. 그리고 그 사람의 눈.
서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강이준의 재킷 안주머니, 봉투의 모서리가 비어져 나온 바로 그 지점을 응시했다.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서도윤의 입술도 마찬가지였다. 복도의 형광등이 윙 하고 미세한 소리를 냈고, 자동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서도윤의 손이 올라왔다. 닫히는 유리문 사이로 팔을 밀어 넣어 센서를 다시 작동시켰다. 문이 멈추었다. 두 사람 사이에 유리 한 장의 간격만 남았다.
서도윤이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섰다. 강이준의 재킷 안주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