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윤의 손가락 끝이 밴드의 가장자리를 눌렀다. 살짝. 한 번 더.
강이준의 손등 위, 오래된 흉터를 가로지르는 연한 살색 밴드가 아침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에덴 스카이의 공기는 전날 저녁과는 전혀 달랐다. 노을의 붉은 기운 대신 이른 아침의 청명한 빛이 옥상 정원의 나무들 사이로 비스듬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쪽 끝이 뜨는데."
서도윤이 밴드 모서리를 엄지로 다시 눌렀다. 그의 손톱이 강이준의 피부에 아주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강이준은 그 접촉을 피하지 않았다. 어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의 공기 속에 내려앉아 있었다.
"약국에서 방수 제품으로 골랐어요. 이전 거는 땀에 바로 떨어졌으니까."
서도윤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소와 거리가 멀었다. 데이터를 읽어주듯 담담하면서도 끝음이 약간 낮게 깔렸다. 강이준은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봤다. 10년 넘게 엄지로 누르던 그 자리가 얇은 밴드 한 장 아래 숨어 있었다.
"새벽에 산 거야?"
"편의점 가는 길이었어요."
서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귀 뒤가 옅은 분홍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강이준은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밴드 위에 자신의 엄지를 올려놓았다. 서도윤의 손가락이 아직 거기 있었으므로 두 사람의 손끝이 겹쳤다. 1초. 2초. 서도윤이 먼저 손을 뺐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 흉터, 이제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강이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자신도 조금 놀란 듯 입술을 다물었다. 평소라면 삼켰을 문장이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패배라고 규정해온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목소리가 너무 고요했다.
서도윤이 옥상 난간에 등을 기대며 강이준을 올려다봤다. 반 뼘의 거리. 어제 저녁 노을 아래서 확인한 그 간격 그대로였다. 서도윤의 눈동자에 아침 빛이 얇게 걸렸고, 그 안에서 강이준은 자기 얼굴의 윤곽을 봤다.
"숨긴 적 없었잖아요. 그냥 아무도 안 물어봤을 뿐이지."
비꼼은 없었다. 사실을 확인하는 어조. 강이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힘이 빠진 웃음. 어젯밤 옥상에서 처음 보여준 그 표정이 아침에도 남아 있었다.
옥상 정원의 자동 급수 장치가 작동하며 미세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잎사귀 끝에 맺힌 물방울이 빛을 머금고 떨어졌다. 강이준은 그 소리를 들으며 어깨의 힘을 풀었다. 오랜만이었다. 어깨 위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아침.
두 사람이 15층 프라임 존으로 내려온 것은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기획 1팀의 공기가 달랐다. 평소에는 키보드 소리와 커피 기계음이 뒤섞여 있을 시간인데, 복도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강이준이 먼저 알아챘다. 팀원 세 명이 유니온 라운지 쪽 유리벽 앞에 모여 태블릿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팀장님."
막내 기획자 한지우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서 혈색이 빠져 있었다.
"로열 보드 회의록이 유출됐어요. 새벽 세 시에 사내 게시판에 올라왔다가 삭제됐는데, 누가 캡처를 돌렸어요."
강이준이 한지우의 태블릿을 건네받았다. 화면에는 로열 보드의 긴급 회의 안건 목록이 찍혀 있었다. 세 번째 항목에 형광 노란색 하이라이트가 쳐져 있었다.
'프로젝트 제니스 기획안 채택 유효성 재검토 — 골든 티켓 사용 절차의 적법성 문제 제기.'
서도윤이 강이준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읽었다. 그의 눈동자가 줄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데이터를 분석할 때의 습관. 이번에는 숫자가 아니라 문장이었고, 문장 하나하나가 칼날이었다.
"유효성 재검토라."
서도윤이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다시 평소의 서늘함으로 돌아가 있었다.
"내 기획안 채택을 무효로 만들겠다는 소리네."
강이준은 태블릿을 내려놓지 않은 채 네 번째 항목을 읽었다. '골든 티켓 발행 당시 수혜자(강이준)의 이해충돌 관계 조사.' 글자가 작았지만 선명했다. 그의 엄지가 무의식적으로 밴드 위를 눌렀다. 방금 서도윤이 붙여준 그 밴드.
"차성민 이사가 어젯밤에 올린 안건이에요."
한지우가 화면을 스크롤했다. 안건 상정자 이름 옆에 차성민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옥상에서 두 사람에게 조사 착수를 통보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그는 이미 로열 보드 전원에게 정식 안건을 배포한 것이다.
강이준이 태블릿을 한지우에게 돌려줬다.
"회의 일정은?"
"오늘 오후 다섯 시. 18층 보드룸이요."
한지우가 목소리를 낮춰 덧붙였다.
"권 부사장이 직접 주재한대요."
강이준은 대답 대신 복도 끝 유리창을 바라봤다. 테헤란로의 아침 풍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시선은 어디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옥상에서의 온기가 손등에 아직 남아 있는데, 발밑이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서도윤은 강이준보다 먼저 서브 존으로 돌아갔다.
북향 사무실의 형광등이 켜지며 차가운 백색광이 책상 위를 덮었다. 에덴 스카이의 아침 햇살과는 정반대의 빛이었다. 서도윤은 자리에 앉자마자 모니터를 켰다. 사내 메신저, 이메일,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 세 개의 창을 동시에 열었다.
기획안 채택 무효화.
그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분해되고 재조합됐다. 서도윤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그는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화면 너머를 보고 있었다. 지난 밤새 정리한 피칭 결과 데이터가 모니터에 떠 있었지만, 숫자들이 의미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강이준이 골든 티켓을 쓴 건 나를 위해서였다.'
그 사실이 서도윤의 사고 체계에 끼어들 때마다 분석의 톱니바퀴가 한 박자씩 어긋났다. 서도윤은 그 감각이 싫었다. 타인의 선의에 빚을 진다는 것. 더 정확하게는, 그 선의가 진심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포스트잇 뭉치와 함께, 습관처럼 남겨온 피드백 메모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강이준의 기획안에 대한 익명 코멘트들. 서도윤은 그중 가장 위에 놓인 메모를 집어 들었다. '감성 어프로치의 도입부 약함. 데이터 근거 보강 시 설득력 상승 예상.' 자신의 필체였다. 강이준에게 직접 건네지 못하고 회의실 테이블 위에 슬쩍 두고 온 것들.
서도윤은 메모를 서랍에 다시 넣고 닫았다.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메신저 알림이 떴다. 발신자는 최영석 상무. '서 팀장, 잠깐 유니온 라운지로. 15분.' 서도윤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태블릿을 확인하는 동작이 습관처럼 따라붙었다.
유니온 라운지의 공조 시스템은 오늘도 22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획 1팀의 선호 온도. 서도윤은 라운지에 들어서며 팔뚝에 서늘한 기운이 번지는 것을 느꼈다. 이 불공정한 온도에도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데, 몸은 매번 반응했다.
최영석이 먼저 와 있었다. 안경을 닦고 있었다. 곤란한 이야기가 나올 때의 전조.
"앉아."
서도윤이 맞은편에 앉았다. 강이준은 아직 오지 않았다.
"로열 보드 회의록 봤지?"
"네."
"내가 오늘 아침에 권 부사장과 통화했어."
최영석이 안경을 쓰며 서도윤의 눈을 정면으로 봤다.
"골든 티켓의 적법성을 문제 삼는 건 명분이고,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어."
서도윤의 등이 미세하게 경직됐다.
"강이준을 퇴사시키려는 거예요?"
최영석이 대답 대신 테이블 위의 종이컵을 돌렸다. 안에 든 커피가 원을 그리며 흔들렸다. 3초의 침묵.
"차성민 이사가 노바 일렉트로닉스 건을 지렛대로 쓰고 있어. 골든 티켓 사용이 이해충돌에 해당한다고 로열 보드를 설득 중이야. 강 팀장이 자기 기획안을 철회하고 서 팀장 안을 밀어준 건, 개인적 관계에 의한 직무 유기라는 논리지."
서도윤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접혔다 펴졌다. 데이터 다이브 상태로 빠져드는 전조였지만, 이번에는 분석할 수치가 없었다. 있는 것은 상황의 무게뿐이었다.
"강 팀장은 알고 있어요?"
"내가 지금 따로 연락했어."
최영석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두 사람 다 오늘 보드룸에 출석해야 해. 다만—"
그가 안경테를 다시 만졌다.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야."
서도윤은 최영석의 표정을 읽었다. 중재자로서의 한계를 인정하는 얼굴. 그 뒤에 숨은 것은 미안함도 동정도 아니었다. 실리주의자의 계산이었다. 유능한 인재를 잃고 싶지 않지만 조직의 방침 앞에서는 감정을 배제하는 사람. 서도윤은 그런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그런 쪽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서도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운지 문을 열자 복도에 강이준이 서 있었다. 서도윤과 눈이 마주쳤다. 강이준의 시선이 잠깐 서도윤의 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얼굴로 올라왔다. 말은 없었지만, 강이준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서도윤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재킷 주머니 안에서 태블릿의 모서리가 손바닥에 눌렸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옥상에서 느꼈던 밴드 위의 온기와는 정반대였다.
오후 네 시 사십오 분.
서도윤은 서브 존의 자기 자리에서 18층 보드룸으로 올라가기 위해 일어섰다. 모니터에는 지난 세 시간 동안 정리한 방어 논리가 스물세 페이지에 걸쳐 나열되어 있었다. 골든 티켓의 발행 근거, 사용 조건, 선례 부재에 대한 법적 해석까지. 서도윤의 방식이었다.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싸우는 것.
엘리베이터 안에서 태블릿을 열었다. 화면에 강이준의 메신저 프로필이 보였다. 상태 메시지는 비어 있었다. 항상 비어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답게.
18층. 문이 열렸다.
보드룸 앞 복도에 강이준이 먼저 와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선 자세. 한 손은 주머니에, 다른 한 손은 밴드가 붙은 손등을 아래로 향한 채 늘어뜨리고 있었다. 서도윤이 다가가자 강이준이 고개를 돌렸다.
"자료 정리했어?"
"스물세 페이지요."
"많네."
강이준의 입꼬리가 아주 약간 움직였다. 웃음이라 부르기엔 짧고, 한숨이라 부르기엔 가벼운 것.
"들어가기 전에."
강이준이 벽에서 등을 떼며 서도윤을 똑바로 봤다.
"서 팀장은 네 기획안이나 지켜. 내 티켓 값은 내가 치러야 하니까."
서도윤의 턱 근육이 움직였다. 반박하려는 동작이었지만, 강이준의 눈이 그것을 막았다. 깊고 단단한 시선. 옥상에서 밴드를 붙여줄 때와 같은 거리에서, 전혀 다른 무게를 담은 눈이었다.
보드룸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 긴 회의 테이블의 상석에 권 부사장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차성민이 태블릿을 세워놓고 있었다. 차성민의 손가락이 자기 손톱 위를 천천히 훑고 있었다.
서도윤은 지정된 자리에 앉으며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스물세 페이지의 방어 논리. 권 부사장의 첫 마디가 그 모든 준비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기획안 검토는 다음 주로 미룹니다."
권 부사장이 안경 너머로 강이준을 봤다.
"오늘은 골든 티켓에 대해서만 논의합니다."
차성민이 태블릿 화면을 회의 테이블 중앙의 프로젝터와 연결했다. 벽면에 문서 하나가 떠올랐다. 10년 전 골든 티켓이 발행된 당시의 이사회 결의문. 서도윤은 문서의 서명란을 읽었다. 발행 승인자 — 강민혁.
강이준의 아버지 이름이었다.
서도윤의 시선이 강이준에게로 갔다. 강이준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테이블 아래에서 그의 오른손이 왼쪽 손등 위의 밴드를 누르고 있었다.
회의는 47분간 이어졌다. 차성민은 준비한 논리를 하나씩 펼쳤고, 권 부사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으로 채웠다. 강이준은 서도윤에게 말한 대로 직접 답변했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서도윤은 기획안 관련 질문이 나올 때만 개입하며 데이터를 제시했지만, 그런 질문은 두 번밖에 오지 않았다.
"결론을 내리죠."
권 부사장이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기획안의 유효성은 차주 재검토하되, 골든 티켓 사용에 대한 징계 절차는 오늘부로 개시합니다."
회의가 끝났다. 차성민이 가장 먼저 일어나 문을 나갔다. 권 부사장이 그 뒤를 따랐다.
서도윤과 강이준만 보드룸에 남았다. 형광등 불빛이 빈 테이블 위를 비추고 있었다. 프로젝터는 꺼졌지만, 강민혁의 이름이 방금까지 떠 있던 벽면의 잔상이 서도윤의 망막에 남아 있었다.
"이준씨."
서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이준이 의자에서 일어서며 양복 소매를 정리했다. 밴드가 붙은 손등이 소매 밖으로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괜찮아."
"괜찮지 않잖아요."
강이준이 서도윤을 봤다. 보드룸의 차가운 빛 아래서, 옥상의 아침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 불일치가 서도윤의 갈비뼈 안쪽을 쥐어짰다.
강이준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습관적인 동작이었다. 화면을 켜는 순간, 사내 메신저의 알림이 상단에 떠 있었다.
발신자: 로열 보드 사무국.
강이준의 엄지가 알림을 눌렀다. 서도윤은 강이준의 얼굴을 보고 있었으므로 화면의 글자를 읽지 못했다. 대신 강이준의 턱선이 굳어지는 것을 봤다.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강이준이 휴대전화를 서도윤에게 돌려 보여줬다.
화면에는 한 줄의 문장이 떠 있었다.
'골든 티켓의 대가는 당신의 퇴사입니다. — 로열 보드 사무국'
서도윤의 손이 강이준의 손목을 잡았다.